[노트북을 열며] 스님이 돈이 필요한 까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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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요즘 불교계의 화두는 돈이다.

부산 범어사 재무국장 스님이 문화재 보수비로 지급된 국고 23억원을 횡령한 사건에 연루돼 지난주 구속됐다. 스님은 조계종의 국회격인 종회의원을 두번째 역임 중인 중진. 범어사가 사과성명을 냈다. 하지만 불교 비정부기구(NGO)들은 "이번엔 반드시 비리를 근절해야 한다" 며 제도개선을 촉구, 적지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문답1>

"혼자 사는 스님이 무슨 돈이 필요합니까?"

불교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는 한 조계종 고위직 스님의 말을 인용했다.

"혼자 사는 스님이 돈 쓰는 재미마저 없으면 무슨 낙(樂)이 있나. "

전제는 같은데 주장은 정반대다. "혼자 사니까 돈 쓸 일도 없을 것" 이라는 게 보통사람들의 생각이다. 반면 "다른 즐거움이 없으니까 돈 쓰는 일에 재미를 붙인다" 는 게 스님의 주장이다.

물론 일부 부유한 스님들의 얘기일 것이다. "아내와 자식이 곧 삶의 즐거움" 이라는 역설적 가르침이라면 수긍이 가는 면도 있다. 그렇지만 돈 쓰기에서 즐거움을 찾는다는 것은 아무래도 어울리지 않는다.

부자 스님들의 돈쓰기는 속인(俗人)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골프와 스키, 스킨스쿠버를 즐기는 스님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일부 스님들은 고급 외제 승용차를 타고 다니며, 극히 일부에선 룸살롱을 드나들거나 도박판을 들락거려 문제가 되는 경우도 있다.

<문답2>

"아무리 돈 쓰는 재미라지만 그렇게 많은 돈이 필요합니까?"

"스님들의 가장 큰 꿈은 '내절 마련' 이지요. "

속인들의 '내집 마련 꿈' 처럼 스님들은 내절 마련을 꿈꾼다고 한다. 범어사 재무국장이 돈을 어디에 썼는지는 모른다. 다만 스님들이 큰 돈을 필요로 하는 이유 중 많은 경우는 자신의 개인 사찰을 짓고자 하는 욕심이라는 얘기다.

<문답3>

"아무 절에나 가면 먹여주고 재워주는데, 굳이 개인 사찰을 가질 필요가 있나요?"

"자기 절이 있어야 푸대접을 안받지요. "

'개인 사찰' 이라는 수입원이 있어야 고정 수입이 생기고, 또 돈이 있어야 자식이나 마찬가지인 상좌(上佐.제자)에게 대접도 받는다는 얘기다. 수입이 있으니 귀족적인 취미생활을 즐길 수 있고, 말년에는 상속을 기대하는 상좌의 뒷바라지를 받을 수도 있다. 수행을 대신하는 것이 취미생활이고, 제자들의 시봉(侍奉.받들어모심)을 담보하는 것은 높은 덕(德)이 아니라 많은 재물인 셈이다.

일부 스님들의 돈 쓰기 취미를 5백년 전 서산(西山)대사가 적절히 경고했다는 점은 흥미롭다. 서산대사는 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을 풀어 쓴 『선가귀감(禪家龜鑑)』에서 "말세의 스님들에겐 별칭이 여럿 붙는데, '박쥐중' '벙어리 염소중' '가사 입은 도둑' 등이 그 예" 라고 꾸짖었다.

'박쥐중' 이란 술집이나 도박판에서 밤을 지새고 낮에는 잠자는 존재. '벙어리 염소중' 이란 공부를 안해 설법은 못하면서 '애햄' 하고 허세만 부리는 존재. 마지막 '가사 입은 도둑' 이란 외관은 승려인데, 실제로는 신도들의 재산을 축내는 도둑이란 뜻이다.

서산대사가 경고한 말세라고 믿고 싶지는 않다. 올해도 1천7백명의 선승(禪僧)들이 산중 선방(禪房)에서 화두를 붙잡고 참선수행하는 하안거(夏安居)중이다.

오병상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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