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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5일 미 국가재난사태 도상훈련 … 포틀랜드 현장 가보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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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자연재해와 사건·사고는 예고 없이 닥친다. 인간의 힘으론 막을 수도 없다. 그러나 평소 대비하고 훈련하면 피해는 최소화할 수 있다. 미국은 1989년 알래스카에서 발생한 엑손 발데즈호 원유 유출 사고 후 94년부터 3년마다 국가재난사태(SONS)에 대비한 훈련을 해오고 있다. 22~25일 미국 메인주 포틀랜드에서 벌어진 2010 SONS 훈련을 취재했다.

“기름띠가 해안까지 밀려왔다. 방제선을 바닷가재·조개 서식지로 급파하라.”

24일 오전 메인주 포틀랜드 시내 홀리데이인 호텔 그랜드볼룸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실내체육관 넓이의 공간엔 50여 개의 정부 및 민간조직에서 파견된 400여 명이 꽉 들어찼다. 23일부터 전국 각지에서 속속 도착한 이들은 소속기관과 상관없이 기획·물류·구호·방제·법무·재정 등 10여 개 팀으로 분산 배치됐다.


가상 상황은 급박했다. 22일 새벽 포틀랜드 앞바다에서 유조선과 자동차 운반선이 충돌했다. 그러나 갑작스러운 눈보라와 폭풍으로 24시간 동안 사고 현장에 접근할 수 없었다. 그사이 기름띠는 조류를 타고 남서쪽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본격적인 방제작업은 24일에야 시작됐다. 해안경비대와 메인·뉴햄프셔주, 사고를 일으킨 유조선 및 운반선 선주 셸과 문라이트(가상회사) 대표 다섯 명으로 구성된 지휘통제부조차 전날 밤 꾸려졌다. 그러나 사고와 관련된 관계자를 모두 한 공간에 집결시킨 효과는 금세 나타났다. 기능별로 나누어진 팀은 만 하루 만에 굴러가기 시작했다. 모든 작업이 한 공간에서 이루어진 덕분이었다. 팀별 이견도 즉석에서 조정됐다. 실무자 간에 합의가 안 되면 지휘통제부 5인 대표가 바로 회의를 열어 답을 줬다. 기름띠 제거작업과 동시에 피해 보상 및 어민 지원 대책도 나왔다. 재정팀은 이에 필요한 재원 조달 방안을 내놨다.

지휘통제부에 메인주 대표로 참여한 바버라 파커 국장은 “사고와 관련된 사람을 모두 한 공간에 집결시킨 건 과거 재난 사고의 경험에서 배운 것”이라며 “아무리 통신수단이 발달했어도 얼굴 맞대고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것보다 효율적인 시스템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실제 SONS 상황에서도 지휘통제부는 한 공간에 꾸리는 게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같은 시각 포틀랜드 앞바다에선 해안경비대 함정과 민간회사 선박이 공동으로 기름띠 제거 훈련을 벌이고 있었다. 90년 제정된 유류오염방지법(OPA)에 따라 해안경비대는 전국 24곳에 ‘유출유류처리장비(VOSS)’ 기지를 설치했다. VOSS는 기름띠를 모으는 차단막과 기름을 빨아들이는 특수펌프, 흡입한 기름을 저장할 고무보트로 구성된 장비다. 두 대의 컨테이너에 나눠 담아 트럭이나 항공기로 언제 어디로든 운반할 수 있게 고안했다. 이날 포틀랜드 현장으로 급파된 VOSS는 전날 뉴햄프셔 포츠머스 기지에서 트럭으로 운반해왔다.

훈련 총책임자인 짐 맥피어슨 지휘통제본부장은 “메인주에선 봄에도 날씨가 급변한다”며 “이번 훈련을 3월에 하기로 한 것도 24시간 동안 현장에 접근할 수 없을 만큼 혹독한 기상 조건을 가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이날 오전 7시 캐나다에서 발진할 예정이었던 정찰기 두 대는 갑작스러운 기상 악화로 출동하지 못했다. 그는 “훈련에선 장비·인력을 실제 상황과 똑같이 운용해본다”며 “예상치 못한 상황이 닥쳤을 때 이에 대처하는 능력과 매뉴얼을 확보하는 게 SONS 훈련의 목적 중 하나”라고 말했다.

이날 포틀랜드 환경보호부에 소속된 야생동식물보호소에선 자원봉사자 교육이 한창이었다. 캘리포니아주에서 온 봉사자들은 기름을 뒤집어쓴 새를 씻고 상처를 치료하는 방법을 배웠다. 야생 동식물 전문가 스콧 린지는 “SONS에선 원유 유출 사고 현장에 민간인 접근을 철저하게 통제한다”며 “대신 야생 동식물 구호작업으로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포틀랜드(메인주)=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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