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서 전셋값으로 내집 마련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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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건설업체들이 미분양 아파트를 팔기 위해 파격적인 분양조건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24일 경기도 용인시 공세동의 공세피오레 단지 앞에 계약 조건 안내 현수막이 걸려 있다. [황정일 기자]

경기도 고양시 행신동에서 전세를 살던 직장인 김모(39)씨는 최근 인근에서 입주한 미분양 아파트를 샀다. 전셋값이 많이 올라 옮겨갈 집이 별로 없던 상황에 계약조건이 좋아 내 집 마련에 나선 것이다. 김씨는 “전셋값(1억5000만원) 수준으로 입주할 수 있고 잔금 또한 2년 뒤에 내면 돼 부담이 적었다”고 말했다.

올해 봄은 수도권에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입주를 시작했거나 입주가 임박한 수도권 미분양 단지들이 앞다퉈 좋은 계약조건을 내걸고 있기 때문이다. 이름 밝히기를 꺼린 한 중견 건설업체 임원은 “미분양이 많으면 입주율도 떨어져 건설사로서는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된다”며 “이런 부담을 덜기 위해 입주 단지를 중심으로 잔금 납부 유예 등의 혜택을 내세워 수요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상반기 서울·수도권에서 입주하는 40여 단지 3만여 가구 가운데 미분양 물량이 있는 20여 단지가 분양가 할인 등의 혜택을 내세웠다. 신한은행 이남수 부동산팀장은 “미분양 아파트가 많기 때문에 주택 수요자들은 더 좋은 조건으로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는 기회”라고 말했다. 입주 단지에서 가장 유용한 혜택은 중도금과 잔금 납부 시기를 미뤄주는 것이다. 새 분양 단지의 경우 계약금·중도금·잔금을 2~3년간 나눠 내지만, 입주 아파트는 한두 달 안에 모두 내야 하므로 고객들이 계약을 망설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건설사들도 중도·잔금 납부 시기를 입주 후 6개월에서 2년 이후로 연장해 준다.


서울 강동구 고덕아이파크는 잔금 90%를 입주 후 6개월 뒤에 내도록 납부 조건을 바꿨다. 경기도 고양시 가좌동 한화꿈에그린은 잔금 일부를 2년 뒤에 낼 수 있다. 고덕아이파크 조광제 분양소장은 “요즘 주택 거래 시장이 가라앉자 기존에 살던 집이 안 팔릴 것을 우려해 계약을 망설이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분양가 할인도 싸게 내 집을 마련할 수 있어 수요자들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유보라팰리스 187㎡형(공급면적)은 분양가를 최고 2억원 깎아주고, 인천 신현동 e편한세상·하늘채는 분양가의 10% 정도를 할인해 준다. 경기도 용인시 공세동 공세피오레는 분양가에서 25%까지 깎아준다. 공세피오레 분양을 맡은 로하스 김종윤 이사는 “주변 전셋값 수준인 1억원 정도만 마련하면 즉시 입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료로 발코니를 트거나 냉장고·식기세척기, 천장 등에 매립하는 시스템 에어컨을 공짜로 챙길 수도 있다. 강서구 화곡동 그랜드아이파크와 영등포구 당산동 유보라팰리스, 수원시 인계동 한화꿈에그린파크가 이런 조건을 내세웠다. 한화꿈에그린파크의 한 계약자는 “냉장고나 에어컨이 꼭 필요한 제품들이어서 실수요자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고 전했다.

그렇다고 이런 조건에만 이끌려 무작정 계약하는 것은 곤란하다. 교통·교육 등 입지여건을 꼼꼼히 살펴야 한다. 이남수 팀장은 “중도금·잔금 납부 시기를 연장해 주는 업체가 많지만 새로 분양하는 아파트보다 납부기간이 빠듯한 것은 사실”이라며 “대출규제로 원하는 만큼 돈을 빌릴 수 없는 경우가 많으므로 계약 전에 자금마련 계획을 잘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글,사진=황정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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