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버풀전 결승골 뒤, 아버지가 지성이랑 통화했더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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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한국시간) 맨유의 홈구장인 영국 맨체스터 올드 트래퍼드에서 열린 리버풀전에서 역전 결승골을 터뜨린 박지성. 유니폼의 맨유 로고를 두드리는 골 뒤풀이를 하고 있다. ‘더 이상 셔츠를 팔러 온 사람이 아니라 맨유의 주인’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연합뉴스]

박지성(29·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아버지 박성종(52·사진)씨는 22일 새벽(한국시간) 경기도 수원 집에서 TV로 아들의 리버풀전 역전 헤딩골 장면을 지켜봤다.

감격에 벅차 막걸리를 들이켠 후 새벽녘에서야 잠이 들 수 있었다. 박씨는 “자고 나서 점심 무렵 지성이와 전화 통화를 했는데 기뻐하기보다는 부담스러워하더라”면서 “골이라는 결과보다는 과정을 지켜봐 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그는 “조금 못한다고 욕하지 말고 꾸준히 격려해 주면 더 좋은 활약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시즌 초 부진…휴가 때 푹 쉬었더라면”

매 시즌 초반에는 허덕이다가도 막판에 뜨거워지는 이유를 아버지는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했다. 그는 “솔직히 시즌을 마치고 한국에 와서 휴가다운 휴가를 보낸 적이 없다. 여기저기 불려다니고 일정이 많아서 지성이는 오히려 영국이 편하다고 말한다”며 “제대로 쉬지 못하고 시즌을 맞이하니 초반에 컨디션 조절에 실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A매치 때문에 장시간 비행기를 타면 무릎에 무리가 가는 것 같다”는 말도 곁들였다.

시즌 초 벤치에 주로 머물던 시련을 박지성은 어떻게 이겨냈을까. 아버지는 “지성이는 절대 티를 내지 않는다. ‘벤치에 있을 거면 차라리 이적하라’는 기사를 보고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며 “이미 네덜란드에서 혹독하게 겪어 스스로 잘 조절하며 기회를 기다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한번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의 용병술에 혀를 내둘렀다. “사실 컨디션이 좋지 않아도 경기장에 나가고 싶은 게 선수 욕심인데 퍼거슨 감독은 그걸 잘 조절하는 것 같다”며 “시즌 막판 스콜스와 긱스 등 베테랑을 배제하고 지성이를 중앙 미드필더로 내세우는 걸 보면 감탄스럽다”고 했다.

#"후배 이청용의 선전은 신선한 자극제”

후배 이청용이 골 행진을 벌이던 지난 1월, 박지성은 한 골도 넣지 못하고 결장을 거듭하고 있었다. 후배의 선전이 부담이 되지는 않았을까. 박씨는 “지성이는 청용이가 잘할 때면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집으로 불러다 밥도 먹이고 격려도 해주면서 친동생처럼 아낀다”고 전했다. 이어 “지성이는 요즘 청용이를 보면 2002년 한·일 월드컵 때 자기를 보는 것 같다고 하더라. 한창 관심을 받을 때는 좋지만 힘들 때를 견뎌야 더 큰 선수가 된다고 조언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아마도 후배가 잘하는 모습에 자신도 더 잘해야겠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자극제가 됐을 것이다”고 귀띔했다.

#박지성을 보는 달라진 시선

리버풀전 역전 결승골을 뽑아낸 후 영국 언론들의 평가의 격이 달라졌다. ‘이름없는 영웅(Unsung Hero)’이나 ‘언더 도그(Under dog·다크호스)’로 표현하던 영국 신문들은 톱 도그(top dog·우월한 승자)라는 표현을 내놓기 시작했다. 대중일간지 데일리 스타는 “‘톱 도그’ 박지성이 라파엘(리버풀 감독)을 무참히 격파했다”고 평가했다. 데일리 메일의 데이비드 맥도널 기자는 “박지성이 맨유에 합류했을 때 극동아시아 유니폼 판매를 늘리기 위한 영입이라는 비관적인 시선이 있었다”고 전하면서 “하지만 그는 리버풀전을 계기로 더 이상 과소평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보도했다.

리버풀전이 끝나고 진행된 영국의 국영방송 ‘BBC’의 축구 하이라이트 프로그램 ‘매치 오브 더 데이(MOTD)’의 리 딕슨은 “공간을 잘 활용하는 박지성이 리버풀전에서 루니를 잘 보조했다. 퍼거슨 감독이 으뜸으로 꼽는 박지성의 멀티 능력이 또 한번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고 평가했다.

최원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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