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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50대 부부끼리도 꽃선물 부쩍 늘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꽃배달 전문점 조이인박스의 배달원 정호인(28)씨는 1년 중 요즘이 가장 바쁘다. 어린이날.어버이날.스승의 날에 성년의 날까지 있는 5월은 밸런타인 데이와 함께 1년 꽃장사 매출의 60~70%를 차지한다.

어버이날이었던 8일은 플로리스트들이 밤을 꼬박 새워 만든 꽃다발들을 배달하느라 하루 종일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정씨는 이 일이 꽤 즐겁다. 꽃다발 받는 사람치고 웃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까.

"꽃배달 왔다고 하면 대부분 놀라면서도 좋아하시죠. 비싸고, 먹을 수도 없고, 오래 가지 않는 게 꽃이지만, 그래서 더욱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는 효과가 큰 것 같아요. "

가장 많은 꽃 배달은 역시 연인들의 사랑 고백용 장미꽃 다발. 역시 사랑 고백에는 장미만큼 어울리는 게 없나 보다.

얼마 전엔 1천송이의 장미로 만든 꽃다발로 프로포즈한 남자도 있었단다. 꽃다발 가격만 해도 1백만원. 네명의 플로리스트들이 달라붙어 겨우 만들어냈다. 바구니는 특수 제작했고 트럭에 실어서 운반했는데 들어서 나르는 데만 배달원 3명이 동원됐다. 아파트 현관문을 통과하기도 아슬아슬. 꽃다발을 받은 상대가 활짝 웃으며 맞은 걸 보면 프로포즈는 대성공을 거둔 듯했다고.

40~50대 부부들 사이에서도 꽃다발 선물이 은근히 번져가고 있다.

'그동안 수고했소, 사랑하오' 라고 쓴 카드와 풍성한 꽃다발은 아내를 감동시키는 결혼기념일.생일 선물 구실을 한다.

정씨에 따르면 "얼굴 보면서 꽃을 주기엔 쑥스러운 어른들이 자연스럽게 꽃 선물하기 좋으니까" "10년 전만 해도 남자가 꽃을 들고 다니면 한심하게 쳐다보거나, 바람둥이가 아닐까 하는 의혹의 눈초리를 받았지만, 요즘은 꽃다발을 선물하는 남자를 낭만적으로 보는 추세라서" 꽃배달은 인기다.

하지만 받는 사람이 달가워하지 않는 꽃배달도 있다.

싸움 후 화해의 선물로 보낸 꽃다발을 거부한 20대 여자 손님 때문에 정씨가 문 앞에서 30분이나 서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장미꽃이 2백송이나 들어간 18만원짜리 꽃다발이었는데 여자분이 문도 열어주지 않더군요. 도로 갖고 갈 수도 없고, 시들어버리면 안되는데 하는 마음에 '제가 잠깐 기다릴테니까, 화 풀리면 문 열어 주세요' 하고 기다렸죠. " 결국 문을 열고 꽃다발을 받았으니 화해 의사를 받아들인 걸로 봐야 할까.

꽃을 받고 얼굴을 찌푸리며 "이거 얼마예요?" "누가 이렇게 비싼 걸 보냈어요?" 라고 캐묻는 주부도 있다. 그럴 때 정씨는 "전 잘 모르겠는데요" 하고 일단 자리를 모면한다.

"혹시 '서프라이즈' 효과를 노리고 무기명으로 꽃을 보내지는 말라" 는 게 정씨의 충고. 무기명으로 1백송이의 장미꽃을 보냈지만 다른 사람인 줄로 착각해 실망한 경우, 남편이 아내에게 무기명으로 장미꽃을 보냈다가 엉뚱한 오해를 한 경우 등도 있었다고 전한다.

정씨는 이번 어버이날 꽃 선물의 특징으로 "외국에 가 있어 직접 카네이션을 달아드리지 못하는 자녀들이 꽃배달을 부탁한 경우, 예비 시부모님께 드리는 예비 신부의 애교섞인 꽃다발이 눈에 많이 띄었다는 점" 을 꼽는다.

또 꽃다발에 카드 대신 콘서트 티켓이나 상품권을 꽂아 보내는 것도 새로운 풍속도. 선물로는 안마기.옥 매트.발 마사지기 등이 인기있다.

특이하게는 부모님들이 아이들에게 꽃 선물을 하기도 한다. 정씨는 한달 전에 초등학교 5학년 어린이의 교실에 꽃다발을 전달했다. 수업 중이라 들어가기 머뭇거렸지만 '어서 들어오라' 는 담임 선생님의 허락에 아이의 책상 앞에 생일 축하 꽃다발을 놓았다. 반 아이들의 환호성과 박수로 교실이 시끄러워졌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박혜민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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