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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진 새 시집 '혼자 사는…' 노인들 고독 그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6면

"섬에는 빈집이 많듯이/혼자 사는 어버이가 많다/그 집이 바로 다음에 비워질 집이다/대개가 70에서 80을 바라보는 사람들/여자가 태반이고 남자는 거의 없다/연약한 여자가 소리 지르며 여생을 살 수는 없다/그저 여자이기 때문에 낫으로 보리를 눕히고/호미로 감자를 캐며 산다/(중략)/전화 때문에 효도가 쉽다/-어머니세요 오늘 어버이날인데 아무 것도 드리지 못하고…/ '오냐/오냐/마을에서 꽃도 달아주고 잔치도 해줬다/걱정마라' "

평생을 섬으로 떠돌며 섬에 대한 시를 써 『그리운 바다 성산포』 『섬마다 그리움이』 등의 시집을 펴낸 섬의 시인 이생진씨가 신작시집 『혼자 사는 어머니』(책이있는마을.5천5백원)를 펴냈다. 여서도 등 전남 완도에 딸린 작은 섬 네군데를 둘러보고 쓴 이 시집에는 위 시 '혼자 사는 어머니의 어버이날' 처럼 세상 탓하지 않고 홀로 늙어가는 섬의 고독한 풍경과 현실이 어머니의 마음처럼 드러나 있다.

"학교에 아이들은 없었지만/아이들 목소리는 수도꼭지에 남아 있었다/운동장 풀을 뽑아 운동장을 달랬다는 마을 사람들처럼/운동장에서는 봄마다 민들레가 아이들을 기다리다 갔다/아이들은 아버지 따라 뭍으로 가고 오지 않아서/노인들만이 더 늙어도 얼마나 더 늙었는지 가늠할 수 없었다. " ( '학교가 문을 닫았다' 중)

뭍으로 이사가 학생이 한 명도 없으니 학교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민들레가 피어나 아이들을 기다리는 빈 운동장을 둘러보는 노인들의 마음은 애처롭다. 그래도 노인들은 뭍에서 온 아들.손자들의 전화 한통화에도 오냐 오냐 괜찮다 한다.

이 시집에 실린 섬 연작 89편에는 젊은이들은 없다. 난바다 한 가운데 붙박인 섬처럼 험한 세상 풍파 속으로 떠난 자식들에 대한 안위와 그리움만 넘실거리고 있다.

"소들은/네 마리 다섯 마리씩 그렇게 멍하니/바다를 보다가/사료를 지고 오는 할머니를 보면/어린애처럼 아주 어린애처럼 뛰어온다/억새밭을 지나 동백 숲길을/돌담 언덕을 지나 찔레꽃 논둑 건너/할머니가 오는 곳으로 뛰어온다/ '엄마' /밥을 주는 이는 모두 엄마" ( '엄마와 소' 중)외로워도 외롭다 말 못하고 떠난 자식들에 오냐 오냐 하는 섬 어머니들의 마음을 소가 '음메' '엄마' 하며 대신 달래주고 있다. 오월 가정의 달 가족들이 돌려읽기에 맞춤한 시집이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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