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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포럼] 정부를 더 믿는다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미국의 아폴로 우주선 달 착륙이 조작됐다는 논란을 다룬 지난 주말 TV 프로그램을 흥미있게 봤다.

아폴로 우주인들이 달을 밟은 것은 사실이더라도 당시 냉전의 산물이었던 우주개발 계획에 많은 예산을 들이며 일을 추진하기 위해 미 정부가 극적인 사진 몇장쯤은 조작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 머쓱한 언론개혁 논쟁

특히 흥미로웠던 것은 두가지다.

사실 아니면 조작, 둘 중 하나라는 식으로 몰고가려 하지 않고 논란의 '다면성' 을 충분히 전한 한국 TV 제작진의 태도가 그 하나. 정부(또는 권력)는 항상 의심해야 하며 따라서 조작(때로는 음모)의 가능성을 끝까지 따라가며 견제하고 파헤쳐야 한다는 미국 사회의 인식이 그 둘.

다면성을 자기 입맛대로 '짜맞추지' 않고 있는 그대로 전하려는 언론의 보도 태도, 견제 대상 1호는 항상 권력 또는 정부라는 사회의 의식-.

이 둘은 요즘 갈등구조의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언론 대 정부, 매체 대 매체들 간의 논란을 좀 제대로 돌려놓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들이다.

다시 말해 언론 개혁의 본질은 '제대로 된 보도' 이상도 이하도 아니어야 한다는 것, 개혁의 정의와 방법을 놓고 다양한 생각이 부닥치는 상황에서 '사실' 과 '주장' 을 분명히 구별하는 것만으로도 논의의 수준을 몇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는 것, 언론도 견제의 성역이 물론 아니지만 정부 규제를 끌어들여 언론을 견제하겠다는 발상은 위험천만이라는 것이다.

아폴로 달 착륙 조작설을 예로 들어보자. 가치있는 기사라 하여 다루기로 했으면 우선 '사실' 과 '주장' 부터 구별할 일이다. 이건 기초 중의 기초다.

이를 보도하며 "조작이 드러났다" 고 대서특필하거나 "달에 간 것 확실" 이라고 몰고간다면 다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둘 다 왜곡이다.

이게 아폴로 달 착륙이 아니라 김대중 대통령의 방북기사라고 생각해보라. 이 사회는 두 동강이 날 게다. 자, 이때부터는 오보문제가 아니라 이념투쟁이다. 그러나 아폴로 조작설을 사실대로 보도한 뒤 매체들이 분명한 입장을 '주장'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냉전 속에서 국민을 속이며 쓸데없는 예산을 낭비했다고 우리는 본다. "

"소련과 대치한 상황에서 꼭 필요한 국가사업이었다. 설혹 사진 몇장을 조작했다 하더라도. "

자, 이때부터는 서로 욕하면 안된다. 대신 더 많은 지지를 받도록 우리편 의견을 열심히 알려야 한다.

우리는 민감한 문제를 전하는 쪽이나 접하는 쪽이나 '사실' 과 '주장' 조차 구별하지 않거나 못하고 있을 때가 많다. 그래서 최근의 언론개혁 논쟁을 보며 나는 흥분하기보다 머쓱해질 때가 더 많다.

정부가 나서거나 정부를 끌어들이는 것은 불길하다.

세금을 다 내고 신문고시가 다시 생겼으니 이제 정권과의 악연도 없고 공정경쟁도 보장되겠구나 한다면 순진한 생각이다.

1994년에 공정거래위원회는 맥주 3사의 임원들을 불렀다. 하이트 맥주가 돌풍을 일으키며 시장 판도를 뒤흔들 때였고 공정위는 맥주사들더러 "소비자 피해가 우려되니 과당 판촉.광고를 자제하라" 고 할 참이었다.

*** 정부 규제는 不吉의 씨앗

그러나 소비자들은 맥주사 경쟁을 반기고 있었고 공정위의 본분은 예나 지금이나 경쟁 보호이지 경쟁을 막거나 경쟁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92년에 국세청은 현대상선과 경영진에 대해 검찰고발과 함께 2백71억원의 세금을 추징했다. 당시 일부 언론은 국민당 창당과 관련한 '여론 과세' 라고 분석했다. 세월이 흘러 현대는 대부분의 추징세금을 돌려받았으나 발표도 없었고 기사도 제대로 실리지 않았다. 국세청의 사과도 없었다.

우리는 논의의 본질은 제쳐두고 엉뚱한 곳을 긁고 있을 때가 많다. 부닥친 차는 길에 놓아두고 "당신 왜 반말이야" 하는 장면이나, 해결책을 못찾는 대우차 문제가 '과잉진압' 으로 더 꼬인 것이나 내 눈에는 비슷하다. 언론개혁 논란도 우리 사회의 수준을 반영한다.

열을 올리고 법규를 들이대지만 머쓱하고 불길한 데가 너무 많다.

김수길 경제담당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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