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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출국금지 남발은 안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금융감독원이 부실기업은 물론 금융기관의 임직원.주주.연대보증인까지 내사.조사 단계에서 출국금지를 요청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지금도 관련 규정이 있지만 허점이 많아 좀더 포괄적이고 신속하게 적용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도다.

금감원의 어려움은 이해가 간다. 최근 금융사고가 대형화.다발화하면서 경제사범으로 인한 국민경제의 피해가 커지는 것은 사실이다. 또 조심스레 조사하다 보면 당사자들이 낌새를 알아채고 미리 외국으로 도망가는 바람에 처벌도 안되고 사후수습에도 어려움을 겪는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금감원이 내사 단계부터 특정인의 출국을 금지시키겠다는 것은 인권문제를 도외시한 행정편의적 발상이다.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박탈하는 행위는 최소화하는 게 법의 기본정신이다.

출국금지는 기업활동을 위축시킬 뿐 아니라 옥석(玉石) 구분없이 엉뚱한 사람에게 치명적인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점에서 남발의 소지가 없어야 한다. 과거 큰 문제가 있는 것처럼 소문이 나고, 오래 내사를 받았던 기업인이 별 문제없이 넘어간 경우도 종종 있지 않았던가.

금감원이 허점이라고 지적하는 부분은 우선 관계당국간 유기적 정보교환과 공조, 신속한 조사 등 운용과정에서 상당부분 보완될 수 있는 것들이다. 경제사범의 해외도피는 철저히 막아야겠지만,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보호와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침해해서는 안된다는 얘기다.

최근 정부 부처들은 경쟁적으로 기업.기업인의 활동을 제한.조사할 수 있는 권한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얼마 전 공정거래위원회는 은행계좌 추적권을 연장했고 예금보험공사도 부실기업 조사권을 가졌다.여기다 금감원은 출국금지 기준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권한을 가지면 행사해 보고 싶은 게 공권력의 속성이란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최근의 분위기는 위험천만하다. 게다가 최근 정부 행태를 볼 때 이런 권한을 남발할 위험성도 다분히 있다는 점에서 자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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