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 무역마찰 속 한국의 선택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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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무역불균형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대립이 갈수록 격해지고 있다. 제3자인 우리로선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질까 불안할 정도다. 미·중 마찰은 그 원인 분석이나 해법 모색에 있어서 어느 한쪽에 치우쳐서는 안 된다. 양쪽 다 나름의 입장이 있는 문제다. 상반된 시각, 엇갈린 입장 탓에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구조를 들여다 본다.


◆무엇이 불균형 초래했나=미국의 주장, 이미 다 알려져 있다. 중국이 환율을 조작해 자국 상품가격을 낮춰 미국 시장에 너무 많이 팔고 있다, 중국 시장은 닫혀 있는 데다 소비까지 활성화되지 않아 미국 물건이 중국에서 잘 팔리지 않는다, 그래서 미국이 하나를 팔면 중국은 넷을 파는 무역역조가 생긴다….

중국에 무역적자를 내고 있는 나라들도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2008년 기준으로 주요 20개국(G20) 가운데 중국에 대해 무역흑자를 기록한 나라는 한국·사우디아라비아·남아공뿐이다.

반면 중국은 미국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미국이 수출은 못하면서 수입을 많이 해 무역적자가 생긴다는 주장이다. 낮은 저축률을 보거나 정부와 민간의 그 많은 빚을 보면, 미국이 벌이에 비해 너무 많이 쓰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또 미국 산업 전체, 특히 제조업의 경쟁력이 너무 약해 수출을 못한다는 지적도 있다.

미국에 늘 무역흑자를 기록하는 나라들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일본이나 한국이 미국으로부터 시장개방과 환율절상 압력을 받던 시절 바로 그런 이유를 댔다.

◆불균형을 해소하려면=원인에 대한 인식이 다른 만큼 미국도 중국도 문제해결의 책임을 상대편에 미룬다. 미국은 중국에 당장 외환시장에서 손을 떼 어떻게든 위안화를 절상시키라고 요구한다. 미국 학자들은 위안화가 20%에서 40%까지 절상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시장을 더 열라는 요구와 함께 규제완화나 사회보장제도 확대를 통해 민간 소비를 늘려야 한다는 주장도 한다.

이에 대해 중국은 ▶위안화가 저평가돼 있지 않을뿐더러 ▶2005년 이후 위안화 가치를 달러당 8.25위안에서 6.82위안으로까지 올려 왔고 ▶시장도 지속적으로 개방해 왔으며 ▶내수도 날로 확대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이 할 바를 다했는데도 미국의 무역역조가 해소되지 않으니, 미국 쪽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중국은 미국이 재정긴축이든 민간 소비절약이든, 지금보다 소비를 줄이기 전에는 미국의 수입이 줄어들 수 없다고 본다. 또 미국 제조업이 스스로 국제경쟁력을 강화해야 수출이 늘어나고, 그래야 근원적으로 미국의 대중 무역역조가 해소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무역분쟁이 확대되면=미국은 국제규범에 맞든 안 맞든 일방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무기가 있다. 바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법에 따라 미 행정부가 중국과 환율 협상을 벌여야 한다. 절상 압력으로는 작용하겠지만, 중국이 협상에 응해 줘야 효험을 발휘한다는 점에서 효과가 제한적이다.

위안화 절상을 압박하는 데 미국은 국제통화기금(IMF)도 동원할 것이다. IMF의 등을 떠밀어,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을 비판적으로 평가하게 하고, 그에 근거해 중국 외환정책의 획기적 전환을 강하게 요구토록 할 것이다. 그래도 중국이 안 움직이면 미국은 수입과징금 카드를 꺼내들 수 있다. ‘투사’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25% 수준의 과징금을 운운하고 있다.문제는 수입과징금을 중국에만 부과할 수 없다는 점이다. 부과하려면 모든 무역상대국의 수입에 물려야 한다. 미국이 수입과징금을 부과하는 순간 미국의 모든 무역상대국은 그에 상응하는 무역보복 조치를 취함과 동시에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할 것이다. 이때 양국 간 무역분쟁은 전 세계로 번지게 된다. 그래서 미국이 현실적으로 택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방법이다.

이런 미국의 ‘도발’에 대해 중국은 무역보복 조치나 WTO 제소에 그치지 않고, 보유 중인 미국 국채를 대량으로 내다팔 것이라는 시나리오도 있다. 미국 국채 값이 떨어지고 국채 금리(수익률)가 급상승하며 달러 가치가 폭락할 것을 (아니면, 그런 일이 벌어질 것을 미국이 우려할 것을) 노리고서다. 이에 대해 ‘중국이 보유 자산(미국 국채) 가격을 떨어뜨려 스스로 손해 볼 일을 하겠느냐’는 게 미국의 시각이다. 하지만 중국이 이번 갈등을 자존심이 걸린 ‘무역전쟁’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그렇게 편한 소리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은 어떻게 해야 하나=세계 첫째, 둘째 간다는 나라 사이에 무역분쟁이 본격화하면 파장이 커진다. 세계 교역을 위축시키고 글로벌 경제를 다시 침체에 빠트릴 위험이 있다. 이 마찰이 하루속히 해소되지 않으면 올 11월 서울에서 개최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제대로 치러지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질 수 있다.

모두가 주시하고 있는 미·중 무역분쟁에 관해, 한국은 G20 의장국이자 개최국으로서의 입장이 무엇인지 밝혀야 하는 처지다. ‘선진국과 개도국 간의 중재자’를 표방하면서 미국과 중국의 ‘중간 입장’이나 이도 저도 아닌 태도를 취한다면,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불만을 살 수 있다.

제3자로서 이 분쟁이 특히 골치 아픈 점은 (문제의 원인이든, 해결책이든) 양쪽 주장이 다 일리가 있다는 데 있다. 즉 어느 한쪽의 편을 들 수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글로벌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입장을 택해야 할 것이다. 미국과 중국 간의 문제가 바로 글로벌 경제 문제이고, 따라서 양국 간의 무역분쟁은 곧 글로벌 분쟁이라는 인식을 이들 나라와 공유해야 할 것이다.

양국뿐 아니라 모두를 패자로 만드는 일방적 조치는 마지막까지 자제하는 가운데, 중국도 미국도 한 발씩 물러나 ‘차가운 머리’로 본 사안을 대할 것을 요청해야 할 것이다. 중국에는 수용 능력이 닿는 한 조속한 환율 조정과 시장 개방을, 미국에는 소비 절제의 유도와 (구조조정을 통한) 경쟁력 제고를 조언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조언은, 우리 스스로 외환시장 개입을 자제하고 시장 개방 노력을 지속함으로써 글로벌 커뮤니티의 일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뒷받침돼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도 이 글로벌 불균형에 일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수 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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