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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사계] '중국의 두뇌' 칭화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굶어 죽을지언정 미국의 구제는 받지 않겠다. "

지난달 29일 베이징(北京)대와 더불어 중국 최고 학부인 칭화(淸華)대 개교 9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장쩌민(江澤民)주석은 중.미 대결시대를 상징하듯 1948년 칭화대 주쯔칭(朱自淸)교수가 한 말을 그대로 연설에 인용했다.

국공(國共)내전이 한창이던 당시 朱교수는 장제스(蔣介石)정권을 지원하는 미국의 도움을 거절하자고 제창해 중국에 애국주의의 불을 지핀 인물이다.

이날 칭화대의 개교기념식엔 江주석은 물론 주룽지(朱鎔基)총리와 후진타오(胡錦濤)부주석, 리란칭(李嵐淸)부총리 등 중국 지도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칭화대는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이래 朱총리와 胡부주석 등 차관급 이상 고위 관리만 3백여명 이상 배출한 '중국 지도자들의 요람' 이다. 우방궈(吳邦國)부총리와 자춘왕(賈春旺)공안부장, 시진핑(習近平) 푸젠(福建)성장 등 이 대학 출신 유명인사는 부지기수다.

중국인들은 이처럼 칭화대 출신들이 중국 정가를 석권하고 있는 상황을 가리켜 "대청(大淸)시대가 열렸다" 며 농담을 주고받는다. 사실 칭화대는 청(淸)이 무너지던 1911년 미국에서 받은 배상금 일부를 이용해 미국 유학을 위한 예비학교로 설립됐다.

그러나 영.불 연합군 침략의 뼈아픈 상처가 잔재한 칭화원(淸華園)에 학교가 자리잡으면서 "외세에 설욕하자" 는 격문이 학교에 나붙어 애국 인재양성의 산실로 발전했다.

사실 칭화대는 과학기술 분야에서 더 많은 공헌을 세웠다. 중국 최초의 원자탄과 인공위성이 첸쉐썬(錢學森) 등 칭화대의 두뇌들에 의해 개발됐으며 싼샤(三峽)댐 건설주역도 칭화대 출신들이다.

지난해 대학입시에서 중국 수재들이 베이징대보다 칭화대를 선호한 게 결코 우연이 아니다. 본과생 1만2천6백25명, 석.박사생 9천63명의 칭화대는 경쟁에 못이겨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는 학생들이 가장 많은 대학으로도 유명하다.

칭화대의 왕다중(王大中)총장은 "개교 1백주년이 되는 2011년엔 칭화대를 세계를 이끄는 두뇌의 요람으로 만들겠다" 는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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