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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0만원+α 준다는데 ‘인 서울대’ 출신 한 명도 안 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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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호 24면

“연봉으로 2400만원+@를 준다는데도 ‘인 서울 대학’은 고사하고 ‘서울 근처 대학’ 졸업생 한 명도 지원을 안 한다.”

중견기업 오텍 강성희 회장의 애달픈 구인가

강성희(55) 오텍 회장은 지방 중소기업은 고급 인력을 뽑기가 너무 어렵다고 탄식했다. 충남 예산에 본사를 둔 오텍은 앰뷸런스를 비롯한 다양한 특장차와 구급의료키트 등을 생산하는 중견기업이다. 코스닥 상장업체로 지난해 58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라크·러시아·베트남 등의 해외 영업이 호조를 보여 올해 700억원의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강 회장은 2005년 1000만 달러 수출탑, 2008년 은탑산업훈장에 이어 지난해에는 ‘한국을 빛낸 창조경영인’으로 뽑혔다. 2008년 인수한 한국터치스크린도 올해 350억원의 매출을 기대한다. 두 회사를 합쳐 연매출 1000억원을 바라본다. 지난 10년 동안 창업한 6만 개의 기업 가운데 10년 동안 살아남은 업체는 20%에 불과하고 연매출 500억원을 넘긴 업체는 40~50개에 불과하다. 이처럼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정도의 난관을 극복했지만 인재 확보는 여전히 어렵다.

강 회장은 “중소기업은 일단 인재 확보가 불리한데 지방 근무라는 악재까지 겹치니 설상가상”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지난해 여직원 한 명 뽑는 데 6개월이 걸렸다”고 말했다. 하도 지원자가 없어 학교까지 직접 찾아가 상담했지만 “서울이나 최소한 천안 정도는 돼야 한다”는 답만 들었다. 특히 2006년부터 20여㎞ 떨어진 당진에 현대자동차그룹 자회사인 현대하이스코 철강공장이 본격 가동에 들어가면서 인력난이 더 심해졌다. 이 지역 지원자들도 같은 값이면 대기업 계열사로 간다는 것이다.

오텍은 예산에 250명이 근무하는 본사와 공장이 있고 서울사무소에는 영업과 회계 담당자 15명 정도가 근무한다. 강 회장은 “10년 전 회사를 세울 때 함께 시작한 직원들이 차장·부장급으로 승진했는데 밑을 받쳐 줄 새로운 피가 부족한 것이 가장 큰 고민”이라고 말했다. 1981년 한양대를 졸업한 그는 서울차체공업에 입사해 이사까지 지낸 뒤 2000년 오텍을 창업했다. 강 회장은 “당시에는 건국대·아주대 등 괜찮은 대학 출신 엔지니어들을 찾기가 어렵지 않았는데 요즘은 꿈도 못 꾼다”며 고개를 저었다. 3년 전에는 직접 인재를 키워 보려고 공업고 재학생 10명에게 장학금을 주고 현장 실습을 시켰더니 모두 대학으로 진학해 버렸다. 산학협력 과정을 2년 이상 수료하면 특차로 선발하는 제도 때문이었다.

오텍의 주력 사업인 특장차 분야는 단순 조립 인력보다 설계 능력이 있는 엔지니어가 필요하다. 예를 들어 1200만원짜리 1t 트럭을 7000만원짜리 앰뷸런스로 개조하려면 차종과 주문받은 탑재 장비에 따라 현장에서 기본 설계도를 수정해 만들어야 한다. 오텍이 생산하는 차종은 앰뷸런스뿐 아니라 냉동차, 장애인용 차량 등 50여 종에 달한다. 외국 업체와의 기술 제휴와 해외 판매도 늘고 있어 영어 등 어학 능력도 있어야 한다. 강 회장은 “단순 생산 인력은 필리핀 등의 외국인 노동자로 채울 수 있지만 설계와 해외영업 능력을 갖추고 중소기업에서 일하려는 엔지니어들은 정말 귀하다”고 강조했다.

물론 급여와 복리·후생을 대기업과 비교하기는 어렵다. 오텍의 대졸자 초봉은 2300만~2400만원으로 연봉 3000만원을 넘나드는 대기업이나 2800만원인 공사에는 못 미치지만 1800만~2000만원인 동종 업계보다는 나은 수준이다. 하지만 경력 관리와 기업 경영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을 쌓는 데는 오히려 중소기업이 나을 수도 있다는 것이 강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조직이 잘 갖춰진 대기업은 오래 근무해도 좁고 깊게만 알게 된다”고 말했다. 대기업 회계 분야에 8년간 근무한 경력자를 채용하려 면접을 봤더니 “부가가치세 업무만 해서 장부 정리나 재무관리는 잘 모른다”고 해서 포기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자신의 사업을 꿈꾼다면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다양한 분야를 경험해 보는 것이 좋지 않겠나”라고 반문했다.

오텍이란 회사 자체도 장래성이 있다는 것이 강 회장의 생각이다. 이라크를 비롯한 중동 지역에만 올해 앰뷸런스 수요가 3000대를 넘는 데다 유럽연합(EU) 업체들이 독점하던 러시아 시장에도 납품을 시작했다. 또 하나의 ‘블루오션’이 장애인용 차량 시장이다. 강 회장은 “일본에서는 장애인과 노약자를 위한 특수차량 수요가 연 5만 대에 달하지만 국내 시장은 지난해 500대에 그쳤다”고 말했다. 소득이 올라가면서 국내 시장도 급성장이 기대된다는 것이다. 지난해에는 미국에서 공공부문 장애인 차량 시장의 60%를 차지하고 있는 라이콘과 기술 제휴를 맺었다.

하지만 오텍이 뽑는 신입사원은 연 7~8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2~3년간 일을 가르쳐 놓으면 대기업으로 가기 일쑤다. 지난해에만 3명이 회사를 그만뒀다. 결혼해 맞벌이하는 직원들이 “근무지가 달라 아이를 낳아 키우기 어렵다”며 사직서를 내는데 차마 말릴 수가 없더라는 것이다. 그는 “일자리를 만들자”는 정부의 구호가 별로 믿음직하지 못하다. 일자리가 없는 게 아니라 업체와 구직자의 눈높이가 다른 것이 문제여서 뾰족한 해결 방안이 없다는 것이다. 강 회장은 “대기업에서 밀려난 40대들이 제일 처음 하는 일이 등산복을 사는 것”이라며 “이런 고급 인력이 우리 같은 중소기업에 와서 경험을 전수해 주면 좋겠는데 대기업 부장 시절의 연봉과 대우를 요구하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올 들어 중간관리층을 빼고 직원들과 직접 만나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나누는 행사를 시작했다. 두 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열 생각이다. 상반기 중에는 전 직원과 제주도 올레길을 걷는 것도 검토 중이다. 외부에서 인재를 구할 수 없다면 현재 근무하는 직원들의 사기라도 높여 주기 위해서다. 직원과의 미팅에서 나온 의견에 따라 정기적으로 내던 사원 모집 공고도 중단했다. 자주 공고를 내면 ‘직원들이 자꾸 그만두는 회사’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강 회장은 “구직자들이 중소기업을 기피하는 것은 비전이 있는 곳인지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직원들에게 장래에 대한 희망을 주면 자연히 주변의 동료나 후배들을 끌어올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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