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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부처님 뱃속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 종을 가진 이후에 매일 밤 신장님이 나타나서 본래 있던 곳으로 돌려놓으라 하고, 혹은 지장보살 등이 나타나 본 자리에 호송해 영원 보존케 하라 하여 이런 현몽에 감복해 이 종을 본 자리에 부송하니 잘 수취하기 바란다. "

1991년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으로 삐뚤삐뚤 왼손으로 쓴 듯한 편지와 함께 종이 배달됐다. 87년 말 전북 고창 선운사 창당암에서 도난당했던 동종(銅鐘)이 돌아온 것이다. 부처님의 뜻으로, 우리 모두와 후손에게 남길 문화유산을 자신만을 위해 도적질했다가 양심의 가책에 혼쭐나며 그 뜻을 깨달아 돌려준 것이다

왕자라는 귀한 신분을 버리고 히말라야 설산에서 고행하며 깨달아 우리들에게 가르친 것 중 하나가 무소유. 이 세상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 진리인데 무얼 그리 가지려 집착하느냐는 것이다. 그런데도 좀 더 많이 가지려 사기 치고 빼앗고 도둑질하는 사람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무소유를 가르친 부처님의 그 뱃속까지 갈라 그 안에 든 복장(腹藏)유물까지 털어간 도둑들이 최근 잡혔다.

도둑떼에는 그 문화재의 소중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지켜야 할 전 고미술협회장, 사찰 주지스님과 그들을 잡기는커녕 도둑질의 망을 봐준 경찰까지 섞여 있어 도둑판 사회의 구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일본으로 밀반출했다 들여오는 수법으로 문화재까지 세탁하고 있으니 말이다. 민간에서 불교문화재가 발굴돼 공개될 때 보존상태가 양호하면 복장유물이 세탁된 게 아닐까 의심해왔었다. 불상을 제작하며 부처님의 진신사리나 불경.그림, 그리고 조성한 경위를 쓴 글 등을 그 속에 집어넣어 전해온 것이 복장유물.

조계종이 절에서 도난된 문화재가 세탁돼 민간에 유통되는 것을 막기 위해 펴낸 '불교문화재 도난백서' 는 84년부터 90년까지 4백53점이 도난됐다고 밝히고 있다. 불상은 그대로 있는데 그 속은 감쪽같이 사라졌으나 감히 불경스러워 속 파헤쳐 파악할 수 없는 복장유물까지 합치면 그 수는 헤아릴 수 없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복장유물을 훼손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이라며 도난 예방을 위해 적절한 방안을 마련하라고 했다. 여야 대표 등 정치 지도자들도 부처님 오신 날 봉축법회에 참석한다. 부처님 속, 불심(佛心)은 붙잡는 것이 아니라 각자 마음 속에 있는 좋은 마음이 불심이고 천심이고 민심임을 다잡아주기 위해 부처님은 오신 것이다.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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