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실용] 티베트 문화산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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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문화산책
김규현 지음, 정신세계사, 317쪽, 1만8000원

티베트를 동경하는 마음속엔 원초적인 것에 대한 희구가 있다. 이 원초성은 티베트의 자연, 즉 설역고원(雪域高原)이라고 부르는, 문명의 발길을 거부하는 이 땅의 이미지와 뗄 수 없는 관련이 있다. 물론 이곳에도 포장도로가 끊임없이 깔리고 코카콜라가 히말라야의 산중 마을에까지 배달된다. 역대 달라이 라마가 정치를 폈던 포탈라 궁을 마주보는 광장에는 중국의 오성기가 감시의 눈초리를 떼지 않은 채 휘날리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티베트에서 원초성을 찾는 일이 결코 헛된 일은 아니며,역설적으로 그렇기 때문에 이 일은 더욱 빛을 발한다고 할 수 있다. 보물은 늘 숨겨져 있어야 하는데 특히 티베트의 전통은 ‘현자의 돌’같은 정신적인 보물을 아무도 찾을 수 없게 동굴 속 같은 깊은 곳에 숨겨 놓기 때문이다.

이처럼 원초성과 보물을 연결시키는 것은 티베트의 고승이나 예술가들이 연금술사처럼 티베트의 원초적인 자연을 재료로 영원 불멸의 황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이 황금이 티베트의 문화다. 통과제의의 비유를 빌리면, 원초성을 통과하지 않고서 황금을 만들 수 없고 마찬가지로 황금을 통하지 않고서는 원초성을 볼 수 없다. 적어도 우리가 티베트의 원초성을 보려면 티베트의 정신적 보물인 이들의 문화를 만나지 않으면 안 된다.

『티베트 문화산책』은 티베트의 정신적 보물에 다가갈 수 있는 다리를 놓고 있다. 흥미롭게도 이 책은 ‘다리를 놓은 고승’(탕돈갈포)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고승은 어린 수행자 시절에 큰물이 난 계곡에서 스승이 자신의 몸을 희생해 다리가 되어줌으로써 살아남게 되었는데, 이후로 그는 다리를 세우는 일에 일생을 바친다. 그러나 다리를 세우기 위해서는 자금이 필요했다. 어느 날 장터에서 일곱 자매가 노래하고 춤을 추는데 구경꾼들이 몰려와 열광하며 한두 푼 낸 돈이 삽시간에 쌓이는 것을 보고 고승이 이들의 숙소를 찾아가 자신의 목적을 말하고 함께 일하기로 한다. 고승은 유랑극단의 고문 격이 되어 새로운 연극을 만들었다. 옛날에 춤·구연설화·기악 연주 등으로 따로따로전해오던 것을 합하고 이야기를 각색해 새로운 종합예술을 창안했는데, 상·하층을 막론하고 누구나 좋아하게 되어 다리공사 자금은 충분했다. 고승은 목적을 이루었을 뿐 아니라 새로운 연극을 개척함으로써 ‘연극의 신’이란 호칭을 얻게 되었다.

이처럼 다리 이야기로 문을 연 이 책은 티베트 문화를 네 개의 장, 즉 연극축제, 회화와 조소, 춤과 노래와 음악, 고대 문학과 설화로 나누었는데 저자 스스로가 충실한 다리 역할을 하고 있는 게 돋보인다. 이 책에 실린 자료들은 실로 값진 것이며 티베트의 정신적 보물이다. 독자들이 이 보물을 통해 티베트의 원초성을 발견하려고 한다면 자료들은 훨씬 날것으로 다가올 것이다.

예컨대 롭쌍 왕자 이야기는 우리나라의 ‘선녀와 나무꾼’ 과 같은 계통의 설화인데 훨씬 흥미롭고 극적이다. 시대상과 사회상도 잘 반영하고 있지만 3분할 된 우주 축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스토리 속에 원형적 상징이 풍부하게 들어 있다. 천상과 지상과 지하(여기서는 물속)의 세계를 뚫고 있는 우주의 축은 소통의 통로다. 일례로, 천상으로 갈 수 있는 ‘진주 비녀’의 경우를 보자. 선녀를 지상에 잡아둘 수도 있고, 지상에서 구출해 천상으로 오르게 할 수도 있는 이 신성한 보물은 신성의 양면성(선과 악)이자 인간 내면의 양면성이다.

이분법적 사고에 길들여진 현대인에게는 비논리적이지만 이 책에서 우리가 이런 이야기들을 찾는 이유가 바로 논리의 함정에서 벗어나 원초적인 것으로 회귀하고 싶기 때문이다. 펄펄 살아 있는 것은 논리로가 아니라 느낌으로밖에 만날 수 없기 때문에.

김영종(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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