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이혼… 비혼… '독신은 자유' 떳떳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5면

"너무 콧대가 높은 거 아냐?"

서른이 넘도록 결혼하지 않은 사람들은 꼭 한번쯤 이런 말을 듣는다. "저러니까 안데려가지" 라는 말은 또 어떤가. 이혼한 사람들도 이런 비난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좀더 참고 살지 그랬어" 라는 잔인한 핀잔. 결혼은 이렇게 대단한 '벼슬' 이 되기도 한다.

결혼 안한 여성, 이혼한 여성, 사별한 여성 등 독신여성 20명이 참여한 싱글여성캠프(경기도 파주시 홍원연수원). 지난 주말 '싱글여성으로 당당하게 살기' 란 주제로 열린 1박2일의 캠프 현장을 찾아가 이들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 동거도 당당하다

"저는 서른여덟살이고요, 비혼입니다. 독신주의는 아닌데 어쩌다보니…. " 실오라기를 서로 자기 한 손에 엮으며 그물을 엮어가는 사이 자기소개시간. 역시 스무명의 각기 다양한 사연(?)이 쏟아졌다. 독신이 자유로워서 좋다는 여성, 폭력 남편 혹은 무능력한 남편과 이혼한 여성, 자상한 남편과 사별한 여성…. 이날 소개에서 관심을 집중시킨 것은 남자친구와 자신의 동거 사실을 '커밍아웃' 한 싱글 아닌 싱글들.

올해 29세인 한 여성은 "남자친구와 3년째 동거하고 있다" 고 스스럼없이 밝혔다. 자신을 '싱글' 로 소개한 이유는 "앞으로도 결혼할 계획이 없다" 는 것. "남자친구와 평등하고 자유로운 관계를 맺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만족하고 있다" 는 그는 "지금의 가족제도하에서 속박이 될 결혼을 선택할 생각이 전혀 없다" 고 말했다.

동거 사실을 밝힌 여성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서른세살의 또다른 참석자도 역시 비슷한 상황. "깜짝 놀랐어요. 젊어서 그런지, 참 당당하군요. " "남편이랑 사별한 지 1년 반 됐어요. 위로를 받을까 해서 왔는데, 충격받은 거 같아요. (웃음)" 휴식시간에 나무그늘 벤치에 나란히 앉은 50대 정모씨와 40대 강모씨는 이런 얘기를 주고 받았다.

▶ 독신 공동체도 계획

운동과 저녁식사, '싱글의 당당한 삶과 호주제' 에 대한 강연이 끝나고 30.40대 연령층과 비.이혼 등 4개 팀으로 나뉘어 집중 토론이 벌어졌다. 싱글 경력이 만만치않은 다섯명이 모인 40대 비혼팀. 이들은 모두 '어쩌다파' (어물쩡 독신이 된 것)보다 '소신파' (본인의 의지에 따른 것)라는 점이 특징. 오순애(44.서울여성의전화 이사)씨는 "내게 혼자 사는 삶이란 결혼이 줄 수 있는 안락함을 포기하고 자유를 선택한 것" 이라고 말했다.

S생명 생활설계사로 일해온 그녀는 라틴댄스와 수영을 즐기고 15년 동안 해온 비정부기구(NGO)활동을 체계화할 NGO학에도 관심을 쏟고 있다.

"독신을 특별한 그 무엇으로 보는 게 문제입니다. 왜 독신의 삶을 평범한 누군가의 일상, 다양한 가족형태의 하나로 받아들이지 못하죠" 라고 오씨는 반문했다.

공무원으로 20여년 일해왔다는 정모(45)씨 역시 "자신이 결혼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는 그는 "결혼하는 사람들이 있듯, 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주면 좋겠다" 고 말했다.

정씨는 또 "주변에 독신으로 사는 친구들과 선배들이 많다" 며 "요즘에는 이들과 독신 공동주택 등 노후를 잘 보내는 구체적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고 말했다.

▶ 이혼하고 밝아진 삶

이 캠프의 참석자 중에는 이혼한 여성이 절반. 대부분 폭력과 무능력이 문제인 남편과 헤어진 자신의 선택을 부끄러워하지 않았다. "폭력을 행사한 남편과 이혼하고 부모님이 충격받을까봐 1년 뒤에야 사실을 알렸다" 는 35세의 박모씨는 "직장에 다니면서 두 아이와 함께 사는 지금의 삶을 다른 것과 바꾸고 싶지 않다" 고 말했다. 그는 "남자친구가 지금 우리 아이들을 맡아 돌봐주는 덕분에 여기에 참석했다" 며 활짝 웃었다.

이은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싱글여성모임은…

'싱글여성모임' 은 비혼(非婚).이혼(離婚).사별(死別)여성들이 모여 독신여성들을 지지하는 모임. 1999년 봄 서울여성의전화(http://seoul.hotline.or.kr)에서 활동하는 회원들 중 독신 여성들이 주축이 돼 출발했다. 현재 회원은 160여명.

'독신' 의 개념을 정립하기까지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 특히 동거는 가장 논란이 뜨거웠다. 결국 개인 스스로 '독신' 의 정체성을 중시한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았다. 미혼여성을 비혼여성으로 표현하는 것도 눈길. 미혼여성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여성' 이란 뜻으로 결혼을 전제로 여성을 규정한 단어이기 때문.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