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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수백만원씩 날려 … 서민 울리는 ‘망둥어 게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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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부산시 남구 대연동 못골시장 내에 위치한 불법 오락실 입구. [송봉근 기자]

빌딩 사이 컴컴한 틈새 길로 들어가니 철제 대문이 나왔다. 대문을 밀고 들어서니 갑자기 무전기를 든 건장한 40대 남자가 앞을 막아서며 퉁명스러운 말투로 한마디 한다. “어디 가십니까.” 기자가 “친구가 새로 개업했다고 연락이 와서 왔다”고 하자 방화문을 가리키며 “노크 하이소” 하고 안내해 준다. ‘똑’ ‘똑’ 두드리니 육중한 이중 방화문이 열렸다. 담배 연기 자욱한 330㎡(약 100평)쯤 되는 실내엔 게임기 90대가 돌아가는 전자음과 배당이 터지는 경쾌한 음악이 섞여 혼란스러웠다.

17일 밤 기자가 들어가 본 부산시 대연동 못골시장 내 불법 오락실 모습이다. 시장 주변에 위치한 이 오락실은 부산에서 서민들이 자주 이용하는 곳으로 비밀리에 명성이 자자하다. 오락장 입구 문은 평범한 가정집 대문 같았다.

실내에는 20여 명이 게임기 앞에 앉아 담배를 피우며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빈자리를 찾아 ‘망둥어’라는 화면이 떠 있는 게임기 앞에 앉았다.

순간 낯선 손님에게 눈길이 쏠린다. 종업원이 오더니 “누구 소개로 왔느냐”고 물었다. “친구”라는 답변에 “그 친구 이름이 뭐죠”라고 되물으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까다로운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서야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었다. “처음 왔다”고 하니 종업원은 화면 위쪽 카드 12장(4장X3줄)을 가리키며 “위의 두 줄 카드에 당첨되면 한 장당 5000원, 맨 아래 줄 4장이 동시에 당첨되면 50배 당첨권을 가져간다”고 알려줬다.

게임기 오른쪽 무릎 높이쯤 있는 지폐 투입구에 1만원짜리 지폐를 넣으니 ‘지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화면 오른쪽 아래 크레디트 칸에 20점이 나타났다. 시간이 흐를수록 크레디트 점수가 줄어든다. 물고기들이 떠다니는 직사각형 화면 위로 공들이 왔다 갔다 하며 물고기를 맞힌다. 손님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일이 없다. 4분쯤 지나자 ‘코인 투입’ 사인이 떴고 1만원을 투입하자 크레디트가 다시 표시됐다. 간혹 공이 배당카드를 달고 있는 물고기를 맞히면 경쾌한 음악과 함께 배당카드(장당 5000원에 현금교환)가 나왔다. 옆자리에 앉은 60대 남자는 오락기를 발로 차며 “어제 밤새도록 하면서 120만원을 넣었는데 오늘도 꼴았다(잃었다)”며 투덜거렸다. 뒤편에는 오락기를 석 대 틀어놓은 사람도 보였다. 그 남자도 “석 대를 돌리면 하루에 300만∼400만원이 후딱 날아간다. 1년에 3000만원 털어 넣는 사람도 봤다”고 말했다. 어떻게 시내에서 이 같은 오락실이 버젓이 영업을 하는 것일까. 비결(?)은 오락실이 경찰의 비호를 받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곳을 자주 들르는 이모(40)씨는 “16일 오전 9시쯤 경찰이 순찰 나온다 해서 종업원 안내로 다른 곳에 피신해 있다가 2시간 뒤 오락실로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종업원이 ‘사장이 경찰과 함께 나갔으니 이제는 괜찮다’고 말하는 점으로 미뤄 경찰과 오락실 업주가 유착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글=부산=김상진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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