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이탈리아, 더 단단해진 '방패군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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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선연한 푸른 빛 유니폼의 '아주리 군단' 이탈리아는 월드컵 단골 손님이자 영원한 우승후보다.

축구팬들은 1994년 미국 월드컵 브라질과의 결승전에서 마지막 승부차기를 실축하고 꽁지머리를 쥐어뜯으며 망연자실하던 로베르토 바조를 기억한다. 또 지난해 유럽선수권대회 준결승에서 1명이 퇴장당해 10명이 싸우면서도 홈팀 네덜란드의 파상공세를 막아낸 뒤 승부차기 끝에 승리한 이탈리아의 저력을 기억하고 있다.

월드컵 3회 우승의 전통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듯 그렇게 쉽게 무너지지도 않는다.

이탈리아는 혼전을 거듭하고 있는 2002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단연 돋보이는 전력으로 조1위를 독주하고 있다. 8조의 이탈리아는 동유럽 강호 루마니아에 2연승하는 등 4승1무(승점 13)로 2위 루마니아(2승2패.승점 6)를 멀찌감치 따돌리고 본선을 준비하고 있다.

다른 팀보다 1~2경기를 더 치르기는 했지만 이탈리아는 그루지야와의 다음 경기(6월 3일.한국시간)에서 승리한다면 조1위를 사실상 굳힌다.

이탈리아 축구 관계자들은 본선 진출을 확신한 듯 올해 초 월드컵 트레이닝 캠프를 물색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 충남 천안의 은행 연수원 시설에 만족을 표시한 바 있다.

이탈리아 축구의 저력은 '카데나치오' 라 불리는 빗장 수비에서 비롯된다. 이탈리아는 이번 월드컵 예선에서도 헝가리에만 두 골을 허용했을 뿐 나머지 네 경기에서는 한번도 골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말디니-칸나바로-네스타-알베르티니로 이어지는 수비 라인은 상대에게 좀처럼 슈팅 찬스를 허용하지 않는다. 한 선수를 제쳤다 싶으면 어느새 다른 선수가 나타나 앞을 가로막는 이탈리아의 수비에 상대팀은 진저리를 치며 공격 리듬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수비진의 롱패스를 받아 한방에 결정내는 공격진에는 유벤투스의 두 영웅 필리포 인자기와 델 피에로가 있다. 이번 예선에서 인자기는 7골, 델 피에로는 4골을 기록 중이다. 문제는 왜소한 체격인 이들 콤비가 월드컵 본선에서도 골 퍼레이드를 이어갈 수 있을지다. 그래서 이탈리아 팬들은 복싱 선수 출신인 우람한 체격의 '파이터' 크리스티안 비에리의 부상이 빨리 회복되기를 고대한다.

일부 축구팬들은 "이탈리아 축구는 너무 소극적"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한국 축구팬들이 '아주리 군단' 이 직접 뛰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는 행운이다. 푸른 옷의 전사들은 1백년 전통에 빛나는 '수비 축구' 의 진수를 느끼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정영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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