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크루그먼 칼럼] 반세계화 가난한 나라 망친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30세 이전에 사회주의에 심취하지 않으면 심장이 없는 것이고, 30세 이후까지 사회주의자로 남아 있으면 두뇌가 없는 것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 말은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반세계화 운동에 그대로 적용된다.

세계화는 반드시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제3세계의 수출품들은 서구적 기준으로 보자면 열악한 근로 환경에서 극히 적은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것이고 이러한 사실에 전혀 개의치 않는 사람은 심장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세계화 시위대의 주장이 옳다는 얘기는 아니다. 세계화에 반대하는 것이 세계적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는 길이라고 믿는 사람은 두뇌가 없거나 두뇌를 사용하지 않는 쪽에 속한다. 실제로 반세계화 운동은 이미 그들이 보호하려는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고 있다.

지난 미국 대선은 이상주의를 좇아 랠프 네이더(녹색당 후보)에게 표를 던진 두뇌가 없는 사람들이 세계 최강대국을 심장이 없는 사람들이 통치하도록 만들었다는 점에서 반세계화 운동의 부작용을 확연히 보여주는 예다.

1993년 방글라데시 어린이들이 수출용 옷을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톰 하킨 상원의원은 어린이 노동자가 만든 물건을 수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 결과 방글라데시 직물 공장은 더 이상 아동들을 고용하지 않았고, 아동들은 더 근로조건이 나쁜 일을 하게 되거나 거리로 나왔다.

제3세계는 저임금으로 수출품을 만들기 때문에 가난한 것이 아니고 가난하기 때문에 저임금 수출품을 만드는 것이다.

수많은 멕시코인들이 저임금 수출품 생산직을 얻기 위해 북쪽 국경을 넘고 있는데 인위적으로 저임금 노동을 제한하면 이들은 일자리를 잃게 된다. 가난한 나라들은 생산성이 낮고 경제적 토대가 취약한 데다 사회구조에 문제가 있다. 이런 나라들은 서구에 비해 임금수준이 매우 낮아야만 세계 시장에서 경쟁할 수 있다.

캐나다에서 열린 미주정상회담을 통해 반세계화 운동 세력은 자신들이 원하는 이미지를 얻었다. 반면 참석한 정상들은 성난 시위대를 피해 회의장 안에만 머물렀다. 하지만 이러한 이미지는 허위일 수 있다. 회의장에 있던 정상들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방법을 연구한 반면 시위대는 자신들의 의도가 어쨌든지 간에 결과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더욱 가난하게 하는 일을 했던 것이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 23일자>

정리=이상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