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보기] 성실성으로 더 빛나는 이봉주 우승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8면

한국을 대표하는 마라토너 이봉주(31)와 황영조(31)는 여러 면에서 대조가 된다.

두 선수를 생각할 때마다 '토끼와 거북' 을 떠올리게 되는 것은 지나친 비약일까.

황영조는 누구나 인정하듯 재능 면에서 단연 발군이다. 순간 스피드를 내는 능력이나 심폐 기능.강한 발목 등 황영조가 이봉주보다 마라톤에 적합하다는 평가다.

이봉주는 한때 '달리는 종합병원' 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로 부실했다. 심지어 왼발이 오른발보다 5㎜나 긴 짝발이어서 특수 맞춤신발을 신지 않으면 뛸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남보다 두배 세배 노력하는 성실함과 황영조도 부러워하는 지구력의 소유자다. 한마디로 타고난 능력이 아니라 노력으로 정상까지 오른 의지의 선수다.

이봉주와 황영조는 토끼와 거북이의 우화처럼 늘 황이 앞서 달렸고 이가 뒤따라 가는 형세였다. 황영조는 1991년 일본 벳푸 오이타마라톤에서 2시간8분47초의 기록으로 2위를 차지하며 주목받은 후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내 세계적인 스타 반열에 올랐다. 물론 돈과 명예가 뒤따랐고 명실상부한 유명인사가 됐다.

동갑내기인 이봉주는 황이 정상을 밟는 동안 겨우 중간 지점에 도달했을 뿐이다. 91년 비로소 국내 마라톤 엘리트 산실이라는 '정봉수 사단' 에 입성했고, 92년 올림픽대표 선발전에 출전했으나 레이스 도중 넘어져 탈락했다.

92년 대구 전국체전에서는 9위에 그쳐 마라톤 선수로 대성할 수 있겠느냐는 의심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이봉주는 피나는 훈련을 거듭, 93년 광주체전 우승과 호놀룰루 국제마라톤 우승이라는 성과를 얻었다.

토끼 황영조가 화려한 질주 끝에 단숨에 정상에 다다른 것과는 대조적으로 그의 질주는 평범하기만 했다. 애틀랜타 올림픽행 티켓이 걸린 96년 동아국제마라톤에서 2위를 차지하며 국내 선수 가운데 최고성적을 올렸을 때에도 세인의 관심은 선두 이봉주보다 한참 처져 절뚝거리며 달리던 황영조에게 더 많이 쏠렸을 정도다.

이봉주는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따내며 비로소 제 이름을 찾게 됐다. 황영조가 누리던 국내 최고의 자리도 넘겨받았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황영조가 부상과 의욕 상실 등으로 다른 길을 모색할 때 고지식하게 앞만 보고 달린 결과다.

마라토너들의 한걸음 한걸음은 고통이다. 뛰는 것도 고통이지만 출발선에 서서 예감하는 고통은 차라리 공포라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정상을 밟은 후에는 좀처럼 다시 뛰기 힘들다고 한다. 이봉주의 우승이 더욱 값진 것도 이 때문이다.

비록 우승은 아니었지만 그는 이미 올림픽 은메달리스트로 마라토너로서의 명예를 얻었고 돈도 벌었다. 거기다가 99년 12월에는 "스승을 배신한 선수" 라는 비난까지 받았다. 어느 모로 보나 더 이상 뛸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이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냈다. 그의 우승이 더 큰 박수를 받는 이유다.

권오중 편집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