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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리뷰]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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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탕평책 등으로 조선 후기 정치.문화의 태평성대를 이끌었던 영조가 2백여년 세월의 벽을 뚫고 청첩장을 보내왔다. 조선 왕실의 혼례문화 해설서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를 통해 1759년 6월 드라마틱한 혼례식이 벌어진 창경궁으로 독자를 초대하고 있는 것. 조선조 최장수(83세).최장기 집권(52년) 왕이었던 그가 66세의 나이로 자신보다 무려 쉰 한 살이나 어린 경주 김씨 가문의 처녀를 계비로 맞이한 바로 그 혼례식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은 조선시대 왕실의 혼례를 치르기 위한 임시 기구인 가례도감이 행사 관련 사항들을 그림과 기록으로 남긴 『영조정순후 가례도감의궤』를 바탕으로, 왕실은 물론 평민들의 혼례문화에 대해 일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3년 전 『원행을묘정리의궤』등을 중심으로 왕의 나들이와 당시의 도성 건축 현장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해 보여줬던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의 후속편 격이다. '의식' 과 '궤범' 을 뜻하는 '의궤' 에는 주요 왕실 행사의 내용이 상세히 기록돼 있어 정사(政事) 위주인 『조선왕조실록』과 달리 생생한 생활상을 보여준다.

『66세의 영조 15세 신부를 맞이하다』는 우선 의궤의 그러한 자료적 가치와 기록화인 '반차도(班次圖)' 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한다. 이어 가례의 절정인 '친영(親迎:국왕이 별궁에 있는 왕비를 직접 맞이하러 감)' 장면을 묘사한 반차도를 보여주는데, 총 50쪽 실제길이 16.5m에 이르는 이 그림에 묘사된 인물만 1천1백88명이라고 하니 1.5㎞ 남짓했다는 그 행차의 웅장함이 가히 짐작된다.

영조와 정순왕후의 결혼 이야기 등을 담은 이 책의 후반부는 더욱 흥미진진하다. 오늘날 미인대회 참가자들이 동일한 수영복을 입고 심사를 받는 것처럼 초(初)간택에 참여한 처녀들의 복장은 삼회장을 단 노랑저고리에 다홍치마로 통일했었다는 것, 그때도 용모는 가장 중요한 간택 기준이었지만 당시의 미인이란 통통하고 아담한 여성이었을 것이라는 얘기 등을 풍부한 관련 사료 및 그림.사진들과 함께 맛깔나게 풀어 놓았다.

또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보다 열 살이나 아래였던 정순왕후가 사도세자의 죽음에 어떻게 개입됐는지, 정치적 야심을 숨죽이며 키워 오던 그녀가 손자인 정조까지 죽은 후 마침내 수렴청정하는 모습 등을 묘사한 부분은 한 편의 역사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사계절 출판사의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처럼 혼례식 당일 모습을 소설적으로 재구성하는 등 보다 과감한 시도가 부족한 점은 아쉽지만 기록문화의 정수를 보여주는 의궤를 현대적 감각으로 복원하려한 저자와 효형출판사의 노력은 나름대로 알찬 결실을 보았다고 할 만하다.

이 의궤들을 외침(外侵)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산속에까지 창고를 만들었던 조상들을 생각할 때 병인양요 이후 프랑스 등으로 실려간 상당수 의궤들을 아직도 제자리로 돌려놓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후손으로서 부끄러울 뿐이다.

김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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