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싸움' 서 밀린 미국…"매우 미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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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미국과 중국의 말싸움에서 결국 미국이 밀렸다.

미 정찰기 억류사건 초기부터 중국이 꺼낸 카드는 '사과(apology)' 였다. 중국 정부는 국민의 격앙된 감정을 고려하고 꼬여가는 대미관계에서 유리한 입지를 얻기 위해 이 선을 그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은 사과를 거부하며 '유감(regret)' 정도로 해결하려 했다. "정찰기는 국제법에 따라 비상 착륙한 것이고 미국은 사과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는 논리였다.

'regret' 은 국가 체면이 걸려 있을 때 애용되는 가장 모호한 외교적 표현이다. 'regret' 은 중국어로 '이한(遺憾)' 인데 중국측은 매우 소극적인 묘사라며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급해진 미국이 한 발 물러났다. 콜린 파월 국무장관은 9일 TV에 출연해 "미안하다(sorry)" 는 단어를 썼다. 유감이 보다 강도높은 '미안' 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이 단어는 중국이 양보하기에는 수위가 낮은 것이었다. 게다가 미 정부의 공식 발표가 아니라 장관의 비공식 언급이었다. 중국은 계속 사과를 밀어붙였다.

미국은 막판에 'sorry' 앞에 'very' 라는 강도높은 부사(副詞)를 붙여야 했다. 중국 외교부장에게 보낸 조셉 프루어 주중대사의 공식 서한은 "부시 대통령과 파월 국무장관은 실종된 중국 조종사와 비행기에 대해 '진지한 유감(sincere regret)' 을 표명한다" 며 '진지한' 이라는 형용사를 첨가했다.

서한은 최종적으로 "중국 국민과 비행사 가족들에게 우리가 그들의 손실에 대해 '매우 미안(very sorry)' 하게 느낀다고 전해달라" 고 적었다.

사과(apology)는 아니지만 정중한 사과성 발언이었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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