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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이 웬 이종격투기냐고? 추성훈 선수 경기 보고 빠졌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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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로킥(low kick), 로킥, 미트(mitt), 미트….”

이종격투기 훈련에 나선 이동익 신부(왼쪽)가 사범이 내민 미트에 펀치를 날리고 있다. [김성룡 기자]

9일 오후 서울 사당동의 가톨릭 계열 기숙사인 ‘노기남관’의 체력단련실. 유도복을 입은 중년 남성 2명이 사범이 내민 미트(타격훈련용 글러브)에 연거푸 펀치를 날렸다. 이들이 낀 글러브는 손가락이 나오는 이종격투기용이었다. 순간순간 사범의 구령에 따라 다리를 공격하는 로킥도 찼다. 거친 숨소리와 함께 얼굴은 이내 땀 범벅이 됐다. 잠시 숨을 고르던 한 남성이 “펀치와 로킥을 날리다 보면 스트레스가 완전히 날아가 버린다”며 이종격투기 예찬론을 폈다.

그가 바로 가톨릭대 의대와 산하 8개 병원을 총괄하는 가톨릭 중앙의료원의 최고경영자(CEO)인 이동익(54) 신부다. 그는 저명한 생명윤리전문학자로 황우석 박사의 배아줄기세포 논란이나 김 할머니의 존엄사 논쟁 당시 언론에도 자주 등장했다.

이 신부가 이종격투기를 시작한 것은 지난해 6월. 우연히 일본에서 활약 중인 이종격투기선수 추성훈의 경기를 보면서다. 그는 “추 선수의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보고서는 매료됐다”며 “그의 훈련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도 봤는데 집념을 갖고 엄청난 훈련량을 소화해내는 게 멋있어 보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살아가는데 때로는 파격이 있어야 조금 더 창조적으로 나갈 수 있다”며 “그래서 성직자와는 잘 어울리지 않는 이종격투기에 일부러 입문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이 신부는 이왕이면 여러 명이 함께 훈련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희망자를 모았다. 신부 6명과 직원 1명, 그리고 훈련을 맡을 사범 2명이 채워졌다. 팀 이름을 ‘아수라(阿修羅) 무도관’으로 지었다. 아수라는 인도 신화에 나오는 신선들의 적으로, 흥미로운 이름을 찾다가 붙였다고 한다.

‘아수라 무도관’ 수련생들은 추 선수가 입는 경기복과 같은 훈련복도 준비했다. 무협지를 본떠 각자 별칭도 붙였다. 최고 연장자이자 관장 격인 김병도 신부는 ‘대사부’, 이 신부는 실제 수련생 중 나이가 가장 많아 ‘으뜸신형’으로 지었다.

이들은 매주 두 차례 모여 한 시간씩 훈련을 한다. 20대인 사범들이 ‘스파르타’ 식으로 몰아붙이는 탓에 5분만 지나도 땀이 억수처럼 쏟아진다고 한다. 이 덕분에 자연스레 다이어트 효과도 제법 봤다. 이 신부는 “스키·축구 등 여러 운동을 해봤지만 이종격투기가 가장 힘들다”며 “운동 시작 석 달 만에 7㎏이나 뺐다”고 말했다.

옆에서 함께 운동하던 고형석 신부도 “체중이 세 자릿수였는데 이종격투기를 시작한 뒤 10㎏ 이상 줄어 지금은 두 자릿수가 됐다”고 거들었다.

이들은 이종격투기가 정신 건강에도 큰 도움을 준다고 입을 모은다. 이 신부는 “의료원에서 고된 정신노동으로 지쳤다가도 훈련으로 땀을 흘리면 집중력도 높아지고 매사를 더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게 된다”고 말했다. ‘아수라 무도관’ 멤버들은 훈련은 열심히 하지만 정식 경기는 물론 연습 경기도 하지 않는다. 부상을 우려해 절대 안한다는 원칙을 정해놓았다고 한다.

그는 요즘 서울성모병원 내에 100∼150병상 규모의 자선병원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성모병원 의료진이 일주일에 서너 시간만 할애하면 어려운 형편의 환자들이 최상의 서비스를 거의 무료로 받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자선병원의 이름을 ‘김수환 추기경님을 기념하는 자선병원’으로 짓는 것도 고려 중이다.  

글=박태균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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