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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상봉 남북 부자 평양서 다시 만난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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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해 8월 15일 이후 세차례 이뤄진 남북 이산가족 상봉.

그 눈물의 현장들을 연출했던 6백가족 중 한 가족이 처음으로 다시 만난다.

짧은 만남을 뒤로 한 채 "꼭 다시 보자" 고 기약했던 다짐이 실현되는 것이다.

1차 상봉에서 북측 방문단으로 서울에 왔던 북한 공훈과학자 조용관(趙鏞官.79)박사와 그의 아들 경제(璟濟.53.호주 시드니 거주)씨가 주인공이다.

경제씨는 10일 기자와의 국제전화에서 "아버지를 다시 뵈러 17일부터 닷새 동안 평양을 방문한다" 고 밝혔다.

그의 아내 최영순(崔永順.49)씨와 여동생 경희(璟姬.51.호주 멜버른)씨가 동행한다.

방북은 이들이 호주 시민권자(1994년 이민)여서 이뤄질 수 있었다. 지난해 호주와 북한이 국교를 재개했기 때문이다.

경제씨가 지난해 10월 말 호주에 있는 북한 명예영사를 통해 평양방문을 신청했고, 4개월 만에 "방북이 가능하다" 는 통보를 받은 것.

그는 "지난해 8월 경희와 함께 서울에서 아버지를 만난 이후 여러 차례 편지.전화.팩스로 연락을 해왔다" 며 "아버지를 호주로 초청할까 생각도 했지만 고령이신 점을 감안, 우리가 평양에 가기로 했다" 고 말했다.

경제씨는 "상봉 이후 받은 아버지의 편지들엔 매번 자식들을 돌봐주지 못한 데 대한 회한이 가득했다" 면서 "올초 '쌓이고 쌓인 50년의 축하장' 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너무도 기나긴 세월 네 가슴을 아프게 한 이 애비를 용서하라' 는 내용을 받아보고 가슴이 미어졌다" 고 했다.

趙박사는 현재 북한 경공업 분원 방직연구소장으로 활동 중인 방직기술 전문가다.

6.25 발발 직후 두살이던 경제씨와 갓난아기였던 경희씨 등을 두고 단신 월북했다.

경제씨는 남한에서 명문대 법대를 졸업했지만 '연좌제' 등으로 마음고생을 하다 어머니가 타계하자 호주로 이민갔다.

그 과정에서 이들 부자의 가슴 속에 쌓였던 50년의 한은 지난해 상봉장에서 이미 눈녹듯 녹아버린 터다.

호주산 양모 이불과 지난번 상봉 때 찍은 비디오 테이프.보청기 등을 선물로 준비한 경제씨는 "아버지가 사시는 집을 꼭 가보고 싶지만 그쪽 사정을 잘 몰라 일단 평양 고려호텔을 예약했다" 며 아쉬워했다.

경제씨는 "처음 만나게 될 새 어머니와 동생.조카들 선물도 준비했다" 고 했다.

경제씨는 "나는 호주 이민 덕에 재회를 하게 됐지만 다른 이산가족들을 생각하니 미안한 생각이 든다" 며 "다른 사람들도 그리운 가족을 다시 볼 날이 빨리 오길 빌겠다" 고 말했다.

세 사람은 14일 시드니를 떠나 서울과 베이징을 거쳐 평양에 간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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