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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정찰기 해법은 투명하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한 나라가 다른 나라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첩보작전은 모든 국가들이 다 수행하면서도 서로 모른 척하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양국 관계가 원만할 때는 첩보문제가 생겼다가도 금방 해결되지만, 민감할 때는 결정적인 사건으로 비화하기 쉽다.

***정치적으로 풀려는 美.中

지난 4월 1일 미국의 EP-3 정찰기가 중국의 F-8 전투기와 충돌한 뒤 중국남부 하이난(海南)섬에 비상착륙하자, 양국은 사고 해결보다는 자존심 대결로 맞서고 있다.

이번 사고는 발생 장소와 시기가 매우 의미심장하다. 먼저 사고가 발생한 남중국해 지역은 중동의 석유가 동북아시아로 이동하는 길목이며, 전략적 요충지다.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이 포린 어페어스지 기고에서 "중국은 국익의 관점에서 대만과 남중국해에 지대한 관심이 있으며, 현상 유지보다는 스스로 아시아 힘의 균형을 잡으려고 한다" 고 지적한 바로 그 지역에서 발발했다.

말라카 해협에서 남중국해를 지나는 에너지 수송라인은 베트남.필리핀.대만.일본.한국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미국의 제7함대가 중국과 러시아의 남하정책을 저지한 아시아 방위선이 지나가는 곳이다. 단순히 중국 국경이기보다는 미국과 중국이 각자 형성해온 세력균형의 접경지역이다.

사고는 연례 미국.대만 군수회의를 앞두고, 미국이 국가미사일방위(NMD) 구상에 박차를 가하는 시점에 발생했다. 대만이 전역미사일방위(TMD) 구축에 필수적인 이지스함을 비롯한 다량의 무기 구입을 요청하자 중국측은 미국정부에 무기 판매 중지를 요구했지만 만족스러운 답변을 듣지 못했다. 이외에도 중국계 미국인 학자들의 중국 억류, 중국 군인의 미국 망명 등의 사건들이 긴장을 조성하고 있었다.

중국은 최근 몇년 사이에 홍콩과 마카오를 돌려받아 세력을 확장해왔다. 중국에 있어서 대만은 민족통합과 국가 자주권 회복, 영토 보존을 상징한다. 대만이 미국과 군사준동맹 관계에 진입하면 대만통합은 그만큼 멀어진다. 따라서 중국은 자국의 세력범위를 미국이 침해하고 있다고 받아들일 수 있다.

반대로 미국은 대미교역에서 막대한 국부를 쌓은 중국이 러시아와 함께 NMD를 반대하고 국방예산을 1백70억달러로 증액했으며, 대만을 겨냥한 미사일을 추가 배치하는 움직임 등을 주목했다. 즉 미국이 지난 50년간 유지해온 아시아 지역의 세력균형과 미국의 패권에 중국이 도전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양국이 이런 정서를 투영해 정찰기 충돌 사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하는 점이다. 중국은 미국에 사과를 요구하면서 부시행정부의 강경 외교에 일침을 가하고, 중국이 그렇게 만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 하고 있다. 미국도 사고에 대한 유감만 표시한 채 24명의 승무원과 기체를 반환하지 않는 중국의 태도를 문제삼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양국 내에서 서로를 '적' 으로 간주하는 여론이 일어나고, 미 의회가 대만에 대한 무기판매를 적극 권유하는 등 오히려 부시의 강성외교를 지지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장기화땐 새 불씨 될 수도

미국과 중국은 동맹국은 아니지만 국교를 맺고 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형성해왔다. 사고가 전시가 아닌 평상시에 일어났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정찰기 사고라는 특성상 국제법 적용이 모호하다면 양국이 공동진상조사단을 구성해 해결방안을 강구하거나, 쌍방이 사고 경위를 정확히 조사해 진실을 밝힌 후에 합리적으로 매듭지어야 한다. 투명하게 사고를 처리함으로써 공연한 오해를 불식하는 것이 양국의 자존심을 살리는 길이다.

자칫 사고 처리가 장기화하면 경제.정치.군사 영역에까지 영향을 미쳐 양국의 국익을 저해하는 미.중관계의 불씨가 될 것이다. 사고발생 장소가 아시아 안보와 밀접한 지역이며 에너지 라인이므로 양국이 패권 경쟁으로 치달으면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듯 우리 나라를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이 불이익을 당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 미국과 중국은 정찰기 충돌사건을 이성적으로 처리하기 바란다.

김정원 <세종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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