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영인문학관 개관기념 '문인초상화 104인전' 화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1972년 7월에 열린 국립현대미술관의 '한국 근대미술 60년전' 에는 모자를 쓰고 파이프를 문 채 사색에 잠긴 기다란 얼굴의 초상화가 나왔다.

53년 타계한 구본웅 화백이 그린 '우인(友人)의 초상' 이란 이 작품의 모델이 바로 천재 시인 이상으로 판명되면서 문단과 화단은 깜짝 놀랐다. 1930년대 개성 강한 야수파 풍의 화필로 기재(奇才)라 불리던 화가와 초현실주의 문학으로 귀재(鬼才)로 불리던 시인이 한 작품에서 만났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그해 10월 창간된 월간문예지 '문학사상' 표지에 실린다.

서울 평창동에 세워진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은 개관 기념으로 '문인 초상화 104인전' 을 14일부터 5월28일까지 연다. 영인문학관은 '문학사상' 을 창간해 매월 한국을 대표하는 문인들의 초상화로 표지를 꾸미고 근.현대문학 자료도 발굴해온 문학평론가 이어령씨와 부인 강인숙씨가 사재를 털어 설립한 것.

부부의 이름에서 한 자씩을 따 영인문학관이라고 한 이 곳은 문인 초상화와 서화.선면화(扇面畵).도자기들을 비롯해 문인들의 육필 원고와 직접 서명한 작품집 등 5천여점의 자료를 전시해 한국문학박물관 역할을 하게 된다.

"특별히 문단과 가깝게 지내온 저명한 화백들에게 좋아하는 인물을 선정해 그리도록 청탁했다. 외모의 사실성보다 그의 내면과 작품의 특성까지를 그림으로 보여주기를 바랐다. " 85년 '문학사상' 주간직에서 물러난 이어령씨의 청탁 의도대로 문인초상화들은 그 문인의 얼굴은 물론 그의 시와 소설 세계까지 그린 것이라 할 수 있다.

'봄은 고양이로소이다' 의 시인 이장희의 초상화는 이만익 화백이 그렸다. 봄을 관능적 감각으로 그린 그의 시처럼 우선 이화백 특유의 색감이 잘 드러나 있으며 한 손에는 술잔이, 다른 손에는 그 술로 인해 우러나는 우주적 감각을 시로 쓴 만년필이 들려 있어 이장희의 시세계를 드러낸다.

오수환 화백은 알몸으로 가부좌 틀고 탁배기를 마주하고 앉아 있는 박용래 시인을 그렸다. 수염을 기르고 한 손에 얹힌 새를 바라보고 있는 박시인의 모습에서 평생 술로, 어린애 같은 알몸의 순수로 울며 살면서도 동양적 깊이를 지닌 그의 시세계를 읽게한다.

또 후배 소설가이자 화가인 이제하씨는 최정희의 초상화를 빈 산에 두둥실 뜬 보름달로 그렸다. 최정희가 즐겼던 화투의 공산광 패와 함께 문단을 두루 환하게 했던 여성의 이미지를 살리기 위해서다. 제대로 된 문학박물관이 없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런 문인들의 초상화와 육필 원고 등을 간직한 영인문학관은 문학의 실체와 그 혼을 그대로 보여주는 소중한 장이 될 것이다.

이경철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