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없이 승리" 들뜬 중국 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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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미국과 중국이 군용기 충돌 사건 해결의 접점을 찾아가고 있다. 양국은 사과 여부를 둘러싼 승강이를 벌이고 있지만 곧 외교적 돌파구가 열릴 조짐이다.

미군 정찰기 EP-3가 불시착해 승무원 24명이 억류돼 있는 중국 하이난(海南)성의 성도 하이커우(海口)에서도 이같은 기류는 감지된다. 미국 대표단은 8일 한시간에 걸쳐 승무원들과 3차 면담을 했다. 면담은 이전과 달리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뤄졌다.

대표단의 닐 실록 준장은 "승무원들은 매우 활기에 차 있으며 고향에서 온 e-메일을 보고 기뻐했다" 고 바뀐 상황을 전했다.

반면 중국측에는 '차가운 계산' 도 흐르고 있었다. 8일 군구(軍區)초대소 앞에서 만난 해군 장교 류창린(劉倉林)은 "이번 사건은 수확이 크기 때문에 군 내부적으로 상당히 흥분해 있다" 고 말했다. 일성(一聲)이 '임전무퇴' '일격필살' '백전백승' 등의 구호일 줄 알았는데 의외였다. 추(邱)라는 이름의 장교도 미군 정찰기의 불시착을 "대단한 행운" 이라고 했다.

"싸우지 않고도 적(미군)에게 통쾌한 일격을 가했다" 며 자못 유쾌한 모습이다. 하이난 사범대 지리학과의 한 교수는 7일 "정찰기 불시착은 하늘에서 '정보의 폭포' 가 떨어져 내려온 격" 이라고 평가했다.

이같은 반응은 이번 사건을 대하는 중국의 '이중 구조' 를 보여준다. 그 '겉' 은 '분노와 애도' 다. 분노는 미국에 대한 것이며, 애도는 실종된 전투기 조종사 왕웨이(王偉)와 그 가족들에게 보내지는 것이다.

그러나 저류에는 '현실주의' 가 깔려 있다. 이것이 외교적 타협의 전망을 밝게 하는 근거다.

하이커우의 분위기로만 본다면 중국 관리들은 강경한 겉모습과 달리 속으로는 가능한 한 최대한의 현실적 이익을 얻은 다음,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하다.

사실 EP-3 정찰기의 불시착은 미국에는 뼈아픈 손실이다. 정찰기가 수집한 정보 때문이 아니라 정찰기의 장비와 운용 시스템 때문이다. 중국이 이를 철저하게 연구할 경우 미군은 정보 수집 시스템을 바꿀 수밖에 없다.

군사기술과 승무원 24명의 목숨이 걸린 게임에서 미국과 중국이 과연 어떤 해법을 찾아낼지 이래저래 관심거리다.

하이커우〓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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