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반정부 시위] 현 정부 경제 실정 … ‘포퓰리즘 향수’ 불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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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태국을 일컬어 ‘미소의 나라’라 부른다. 인구의 94%가 불교를 믿고 성인 남자들의 다수가 단기 출가를 경험하면서 몸에 익힌 자비심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친절로 먹고사는 관광 대국이란 실용적 이유도 ‘태국=온화한 나라’란 이미지를 만드는 데 한몫했다. 하지만 요즘 태국인들의 얼굴에선 미소가 사라졌다. 대신 방콕 거리를 뒤덮은 건 “아피싯(총리) 죽어라”는 노기 어린 구호다.

혼란의 한가운데 탁신 친나왓 전 총리(2001~2006년 재임)가 있다. 이번 시위의 직접적인 계기도 탁신에 대한 재산 몰수 판결이었다. 태국 대법원은 지난달 26일 탁신 전 총리의 재직 시절 권력 남용과 재산 은닉 행위 등을 인정하면서, 그의 재산의 60%에 해당하는 14억 달러를 몰수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탁신 지지파가 태국 전역에서 방콕으로 집결한 것이다.

권력을 이용해 재산을 챙긴 부패 지도자 탁신에게 그들은 왜 열광하는 것일까. 여기엔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이란 비판을 받기도 한 탁신의 친서민적 정치노선에 대한 향수 ▶탁신 축출 후 악화일로를 걷고 있는 경제 상황 ▶정치 불안 등의 복합적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또한 농민·서민 중심의 친탁신계와 지배 엘리트·중산층 위주의 반탁신계로 나뉜 양극화도 배경이다. 태국 국민들은 2008년부터 친탁신과 반탁신 진영으로 쪼개져 시위를 반복하며 서로 싸웠다. 정부 청사와 공항 점거 사태가 일어나는 통에 2년 연속 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 정상회의가 무산되기도 했다.

탁신은 2001년 총선에서 승리해 총리가 됐다. 1990년대 이동통신사업으로 성공한 부호였지만, 총리 재직 시절 그가 편 정치는 오히려 친서민 노선이었다. 그는 저소득층에게는 공짜에 가까운 의료와 교육을 제공했고 농촌에 대한 융자를 강화했다. 대중교통망 등 인프라도 대폭 확대했다. 하지만 뇌물과 입찰 비리 등 고질적 부패가 끊이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 탁신을 축출했다. 이후 태국 정치는 ▶쿠데타를 뒤집은 친탁신계의 총선 승리와 ▶다시 이를 뒤집은 반탁신계의 시위와 권력 장악 등 혼란의 연속이었다. 현재 475석의 하원은 민주당 등 집권 연립 165석, 친탁신계 야당 178석으로 나뉘어 어느 쪽도 과반수에 못 미친다. 그 사이 태국 경제는 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탁신 재임 시절 태국 국내총생산(GDP)은 1.5배가량 성장했다. 탁신은 포퓰리즘 성향의 정책을 폈지만 한편으론 국영기업의 민영화로 요약되는 ‘탁시노믹스’를 추진해 효과를 거뒀다. 이런 사정이 얽혀 ‘옛날이 더 살기 좋았다’는 향수에 사로잡힌 탁신 지지자들이 거리로 뛰쳐나오게 된 것이다.

예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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