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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황토 염색가' 류 숙 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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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한쪽 어깨 위로는 푸른 산, 다른쪽 발 아래는 옥빛으로 굽이굽이 흐르는 물길과 백사장, 그리고 지천으로 파릇파릇 돋아나는 새 생명. 황토염색가 류숙(柳淑.49)씨는 찾아가는 길부터 아름답다.

지리산 자락에 섬진강으로 흘러내릴 듯 자리한 전남 구례군 구례읍 계산리 유곡마을의 옛 계산분교. 운동장에 황톳물 들인 광목들이 많이 널려 붉으면서 누런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국문학을 공부하고 여군에 장교로 들어갔다가 사랑을 좇아 탈영, 영창살이도 했던 여자.

결혼생활이 1년 만에 깨져 서른셋에 혼자 되고 1991년 순천에 내려와 수지침 보급.치료를 하면서 흙에 관심을 가졌다. 한의서를 뒤적이다가 황토가 여러모로 몸에 좋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아예 옷에 황톳물을 들여 입고 주위 사람들에게도 권했다.

4년 전부터는 황토 염색 사업화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깊은 땅 속의 깨끗한 황토를 물에 풀어 잡물을 없애는 수비(水飛)를 아홉차례 합니다. 그뒤 햇볕에서 1주일, 그늘서 1주일 이상 발효시켰다 씁니다. "

물들이기도 천이나 옷가지를 황톳물에 담갔다 햇볕에 말린 뒤 빨고 다시 담그기를 수없이 되풀이한다.

이렇게 착색한 천은 세탁기로 빨아도 물이 빠지지 않는다. 또 얼치기 황토 염색 제품과는 달리 불에 탈 경우 흙이 남고, 물을 가볍게 뿌리면 물방울이 구르지 않고 바로 스며든다.

柳씨가 황토 염색에 뛰어든 것은 우리 색과 천연 염색을 되살리겠다는 욕심보다도 그 기능성에 매료됐기 때문이다.

황토 염색을 한 옷가지나 천은 땀을 잘 흡수할 뿐 아니라 냄새를 잘 빨아들인다. 속옷의 경우 며칠씩 입어도 끈적거리지 않고 남자들의 낭습증과 겨드랑이의 암내를 없애준다. 이불이나 요에 황토 염색 천을 사용하면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따뜻하다. 가려움에도 좋아 아토피성 피부염으로 고생하는 이들에게도 효과가 있다.

황토 염색 옷감의 우수성은 순천대 고분자공학과의 분석에서도 입증됐다. 피부 유연성을 증대하고, 해독(解毒)과 모공의 노폐물 제거를 촉진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柳씨가 직원 10여명과 함께 '황기모아' (황토의 氣를 모았다는 뜻)란 이름으로 생산하는 제품은 다양하다. 황토 염색 천으로 만든 팬티.베갯잇.이불.요.커튼.침대씌우개.생활한복과 하얀색 속옷을 물만 들인 것 등.

값은 염색하는 데 손이 워낙 많이 가고 소량 생산을 하다보니 일반 제품보다 비싸다. 황토 염색 천으로 만든 남자용 사각팬티는 1만8천원, 일반 제품을 물들인 러닝셔츠는 1만1천원이다.

월평균 2억5천여만원어치가 판매될 정도로 인기도 높다. 061-783-5942.

◇ 지장수=황톳물에서 흙을 가라 앉히고 떠낸 맑은 물. 동의보감에 '모든 독을 치료하며 특히 산중의 독버섯에 중독됐을 때는 오직 지장수를 마셔야만 낫는다' 고 적혀 있다.

『본초강목』에는 '물고기.고기.과실.채소.버섯 등의 독을 모두 해독한다' 고 돼있다.

구례〓이해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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