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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순교는 죽음보다 신앙 어떻게 증거했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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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호 31면

기사 작성에 참조하기 위해 이력서를 요청하자 변우찬 신부는 “이력서라고 해야 3줄”이라고 대답했다. 그만큼 변 신부는 한국교회사, 절두산 순교성지와 관련된 활동에 매진해 왔다. 신인섭 기자

“우리는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2코린 4, 18) 절두산 순교성지 안내 책자의 서두에 나오는 성경 구절이다.

영혼의 리더<41> 절두산 순교성지 주임 변우찬 신부

절두산 순교성지(국가 사적 제399호)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느님, 하느님의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우리나라 가톨릭 순교 성인 103위 중 27위의 성인과 무명 순교자 1명의 유해를 모시고 있다. 병인박해(1866~1873)의 현장인 절두산은 매년 30만 명이 방문하는 세계적인 성지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와 마더 테레사도 이곳을 다녀갔다.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찬 작업으로 시력 악화
절두산 순교성지의 주임신부는 2005년 12월 부임한 변우찬(46·사진) 사도요한 신부다. 1990년 서품을 받은 변 신부는 서울 창동·역삼동·성산동 성당 보좌 신부를 거쳐 93년 11월부터 한국교회사연구소의 부소장으로 지금까지 일하고 있기도 하다. 변 신부는 한국교회사연구소에서 『한국가톨릭대사전(2006년 완간)』을 편찬할 때 기획·집필·교정·교열·집필자 선정 등 작업의 모든 과정에 몰두하다 시력 악화로 눈 수술을 두 번 했다.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대학원에서 한국교회사를 전공한 변 신부는 『한국가톨릭대사전』에 가톨릭뿐 아니라 불교 등 타 종교의 시각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는 교회 통사인 『한국천주교회사』1, 2권을 최근 발간했다. 가톨릭교회의 아시아선교에서 시작, 조선교회창립에서 오늘날까지 다룰 또 다른 방대한 편찬 작업이다. 마포 합정동에 있는 절두산 성지에서 8일 변 신부를 만났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가톨릭의 순교관은 어떻습니까.
“기본적으로 어느 종교나 순교에 대한 해석은 같을 것입니다. 가톨릭은 하느님을 믿다가 목숨을 잃었다는 데에만 중점을 두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어떻게 믿었나?’ ‘어떻게 신앙을 증거했는가?’를 중시합니다. 라틴어·그리스어에서 유래한 순교는 ‘증거·증언’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단순히 ‘목숨을 잃었다’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글·말·행동으로 증거하다 목숨을 잃는 게’ 순교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피 흘려 죽은 경우에만 순교라고 봤습니다. 신앙의 자유가 인정된 이후에는 순교에 대한 해석이 더 넓어집니다. 피 흘려 죽은 순교를 ‘홍색 순교’, 신앙을 위해 희생하고 포기하는 경우를 ‘백색 순교’, 단식·금육 등을 ‘녹색 순교’라고 합니다.”

-순교하면 성인이 되는 게 쉽습니까.
“우리나라나 1~2세기 유럽의 순교자들 중 행적은 전해지지 않고 이름만 전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순교자가 1만여 명이 넘는다고 이야기하는데 이름·출신지조차 알려지지 않은 경우도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시성이 되기 어렵습니다. 전체적으로는 교회 내에서 성인이 순교자인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 숫자가 비슷합니다. 앞으로는 우리나라도 순교하지 않은 성인이 나올 것입니다. 대표적인 경우가 최양업 신부님입니다.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로 신부님이 된 최 신부는 과로로 병사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시성이 된 분들만 성인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하느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은 모두 성인이라는 점입니다.”

-겉으로만 배교하고 내면적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안 됩니까.
“일본의 경우 그런 사례가 있었습니다. 배교로 목숨을 부지하고 숨어서 신앙 생활을 계속하며 일본이 개방할 때까지 400년 정도 숨어서 산 경우입니다. 한국의 경우 ‘순교를 위한 순교’는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나는 거짓말 못하겠다’ ‘내가 믿는 것에 대해 자신 있다’가 순교자들의 기본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죽음으로까지 연결된 것이지 처음부터 죽으려고 했던 게 아닙니다. 당시 문초 기록을 보면 ‘왜 천주를 믿느냐’고 물으면 순교자들은 떳떳하게 ‘내가 임금을 존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천상에 하느님이 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됐는데 그렇다면 내가 따라야 되지 않겠느냐’라고 대답했습니다.”

-한국에서 성인은 몇 분이나 더 나올까요.
“현재 서류가 완결돼 바티칸에 시성(諡聖)의 전 단계인 시복(諡福)을 신청한 분이 124분 있습니다. 한국전쟁 당시 순교한 분들까지 포함해 새로 시복 신청을 준비 중입니다. 아직 유동적입니다.”

-한때 다산 정약용 선생을 시복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는데요.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70년대, 80년대 초반까지 그런 시도가 있었습니다. 그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이야기하기 어렵습니다. 다산은 세례를 받은 것도 확실하고 배교한 것도 확실합니다. 배교한 이후 쓴 글에서는 천주교 신앙을 암시하는 내용이 나오지 않습니다. 구전에 따라 배교 이후에도 신앙생활을 했다는 의견이 있지만 ‘배교한 것으로 끝났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조정에서는 특히 김대건 신부의 경우 배교하면 살리려고 했던 것 같은데요.
“1801년 전후로 달라집니다. 그 전에는 붙잡힌 사람들이 배교만 하면 무조건 살려줬습니다. 그 이후엔 배교자가 많이 나오지도 않았지만 선참후계(先斬後啓)의 원칙을 따랐습니다. 1801년 이전에는 신자 중에 양반 출신이 많습니다. 가문으로 보나 학문으로 보나 두드러진 분들입니다. 1801년 이후에는 천주교 신앙이 모든 계층으로 확산됩니다. 중인이나 일반 상민의 경우에는 양반이 아니기에 봐주는 것도 없고 더욱 혹독하게 처벌합니다.”

-한국은 한때 성인 숫자에서 세계 4위였는데요 지금은 어떻습니까.
“지금은 순위가 많이 떨어졌을 것입니다. 몇 년 전 스페인 내전 때 희생된 주교·신부·평신도 140여 명의 시성식이 있었습니다. 베트남도 크고 작은 박해를 100여 년 동안 받아 시복·시성 대상이 많습니다.”

비신자도 공감할 수 있어야 성인
-‘백서 사건’의 황사영은 성인이 됩니까.
“현재는 아닙니다. 백서의 내용이 시복 과정에서 문제가 됐습니다. 시복을 위해서는 시복 대상자에 대한 증언, 문초 기록 등 문헌을 모두 검증합니다. 시복 작업 당시 오해의 여지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황사영은 제외됐습니다.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에 대해서도 시복 운동이 있었습니다. 남미 대륙 발견을 후원하고 그 바람에 중남미에 가톨릭이 전파가 됩니다. 가톨릭 전파에 열심이었던 국왕이었다는 점에서만 보면 복자나 성인이 될 수 있을지 모르나 남미 사람 입장에서 보면 그는 원주민 학살의 원인 제공자입니다. 양극단의 평가가 이뤄지는 경우에는 시복이 불가능합니다. 시복·시성 재판 때에는 ‘조사 심문관(devil’s advocate)’이 반대 입장에서 이의를 제기합니다. 비신자가 보기에도 ‘이 사람은 참 열심히 살았다’는 공감이 필요합니다.”

-교회가 해당 국가·정부의 눈치를 보는 것입니까.
“정말로 어떤 사람의 행동이 옳았다면 정부가 싫어해도 시성한다는 게 원칙입니다. 일부 프랑스 국왕과 신성로마제국 황제들이 배우자의 불륜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고해 신부를 고문했습니다. 그 고해 신부들은 성인이 됐습니다. 해당 국가의 명예에 손상을 입힐 수 있으나 그런 경우에도 시성을 합니다. 왕정 폐지 전에 시성이 이뤄졌습니다.”

1998년 만난 교황, 우리말로 “찬미 예수”
-선교에 대한 가톨릭의 견해는 어떻습니까.
“강권하는 선교는 하고 있지 않습니다. 가톨릭의 선교 지침은 어느 지역, 부족이나 민족에 선교하더라도 현지 문화를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전통문화에도 분명 좋은 점이 있고 하느님을 만나게 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니 무조건 서구화하려고 하지 말라는 게 기본 정신입니다.”

-순교자들이 흘린 피를 한국 가톨릭 교회가 급성장한 이유로 들기도 하지만 한국인에게 친숙하게 다가가려 했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84년 방한이 거론되기도 합니다.
“저도 98년 3월 1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왔다는 말에 교황께서는 우리말로 “찬미 예수” “반갑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교황의 한국말에 놀랐습니다. 알현이 끝나고 나올 때에도 역시 우리말로 ‘감사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아직 완간되지 않은 『한국가톨릭대사전』을 들고 갔는데 교황께서는 ‘개인 서재에 두겠다’며 ‘대사전 출간을 후원하는 모든 분들에게 축복을 내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좋아하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까.
“천주교 신부들은 신부가 될 때 각자 기념 상본(像本)을 만드는데 뒷면에 성직 생활의 지향점을 상징하는 성경 구절을 정해 인쇄합니다. 저의 경우 “주께서 쓰시겠답니다”(루카 19, 34)라는 구절을 선택했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타고 가실 어린 나귀를 가져오라고 제자들을 보내면서 주인이 물어보면 대답하라고 일러주신 말씀입니다. 새로 번역된 성경에는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라고 번역돼 있습니다. 나귀 입장에서 보면 자신을 하느님께서 사용하시겠다고 하니 너무나 고마운 일이고 감격할 만한 일입니다. 그러나 길 주변에 늘어선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절하고 환호성을 올린다고 착각한다면 교만하고 거만해질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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