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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9 혁명 계기 된 김주열 열사 50년 만의 장례식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됐던 김주열 열사의 장례식이 그의 사망 50년 만에 거행된다.

김주열 열사 추모 사업회(대표 백남해 신부)는 11일 “다음 달 11일 마산과 김 열사의 고향인 전북 남원에서 장례식을 치르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업회 관계자는 이와 관련, “3·15 의거 50주년을 맞아 예를 갖춰 김 열사의 장례를 치르는 것이 살아남은 자의 도리다. 열사의 시신이 인양된 날이자 4월 혁명의 첫날인 11일을 장례일로 정했다”고 설명했다.

장례는 열사의 시신 없이 혼백만으로 진행된다. 발인과 초혼제는 마산 중앙부두에서 거행된다. 운구행렬은 사망 당시 시신이 안치됐던 옛 마산 3·15 의거 기념탑 등을 돌고 노제를 지낸다.

자유당 정권은 이승만을 대통령, 이기붕을 부통령 후보로 각각 내세워 선거일이던 1960년 3월 15일 선거 부정을 저질렀다. 이에 마산 시민들이 선거 무효를 선언하고 시위를 벌이자 출동한 경찰 병력이 시위대에 무차별 발포했다. 당시 마산상고(현 용마고)에 합격했던 김 열사는 시위 진압과정에서 실종됐고 27일 만인 4월 11일 마산 중앙부두에서 눈에 최루탄이 박힌 채 주검으로 떠올랐다.

이후 시위가 전국으로 확산, 4·19 혁명이 일어났다. 경찰은 당시 마산 도립병원에 안치됐던 열사의 시신을 빼돌려 장례식도 없이 그의 고향인 남원에 몰래 묻었다. 이에 김 열사의 어머니 권찬주(1989년 사망)씨는 “억울하고 원통해 시신을 인수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서울로 운구해 3·15 부정선거에서 당선된 사람들 앞에 갖다 줘라”며 통곡했었다.

마산=황선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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