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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이 길태를 만났을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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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 지난 10일 경찰에 붙잡혀 다음 날 오전 1시까지 조사를 받은 김길태는 유치장 목욕탕에서 샤워를 한 후 때 전 옷을 벗고 경찰이 건네준 트레이닝복으로 갈아입고서 3명이 함께 지내는 유치장에 들어섰다. 하지만 다른 이들과는 눈인사조차 없이 길태는 오전 2시쯤 유치장 한 켠에서 담요를 뒤집어 쓴 채 잠을 청했다. 그러나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리기만 했다. 그때 누군가 말없이 그에게 다가가 앉았다. 법정 스님이었다. 본능적으로 인기척을 느낀 길태가 더욱 담요를 끌어당기며 구석으로 숨자 스님은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본 후 잔잔한 목소리로 입을 떼셨다. “네가 길태지? 길에서 태어났다 해서 길태라 이름 지었다는데 사실 우리는 누구나 길에서 태어나는 거야. 그것도 길 없는 길에서.”

# 엊그제 경찰에 잡히던 날 어느 시민한테 뒤통수를 얻어맞을 뻔 한 길태는 스님 말씀이 자기 뒤통수라도 쳤다는 듯 몸에 감고 있던 담요를 반쯤 걷어내고 허리를 세워 일어서며 헝클어진 갈기머리 사이로 제법 날 선 눈빛을 던지면서 이렇게 응수했다. “왜 남의 이름 가지고 시비야? 그래 나는 영문도 모른 채 태어나 교회 앞 길거리에 버려진 놈이야. 중학교 2학년 때 그걸 알고 나서부터 미쳐버리기 시작했다구.”

# 스님이 말을 받았다. “그래 나도 네 생활기록부 봤지. 중1 때까지는 그럭저럭 괜찮았더군. 활달하게 운동도 잘하고 맡은 일도 잘 처리했어. 그런데 중2 때부터 정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면이 보인다 하고 중3 땐 아예 네 성격에 대해 신중한 가치판단이 요구된다고 적혀 있더군. 길태가 말을 이었다. “내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서 사람들 보기가 싫어졌어. 세상도 싫어졌구. 그래서 막나갔어. 지능지수 검사할 때도 막 해버리니깐 86이 나왔어. 하지만 난 바보 아냐. 세상이 싫었을 뿐이야.”

# 스님이 잠자코 들어주자 길태는 스님 앞으로 몸을 끌며 자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1993년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때려치고 덕포동 옥탑방에 틀어박혔어. 간혹 옥상 난간에 기대 담배 피우는 게 유일한 낙이었지. 그 후 폭행 혐의로 96년 소년원엘 들어갔고 이듬해엔 아홉 살짜리 여자아이를 건드리다가 잡혀 3년 징역을 살았어. 그렇게 저렇게 11년을 교도소에서 썩었어. 내 인생의 3분의 1이었지. 감방에서는 가급적 혼자 우두커니 있었지만 누군가 날 건들면 폭발해서 7번씩이나 징계를 먹곤 했지. 난 더 이상 감옥에서 썩고 싶지 않아. 살고 싶다구. DNA 어쩌구 하지만 난 그런 거 몰라.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아.” 길태는 그렇게 말하며 울먹였다.

# 평생 무소유를 말하고 맑고 향기롭게 살 것을 설법했던 스님은 길태를 바라보며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스님의 혼백이 다시 병상 위로 돌아와 마지막 임종하던 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아무리 불법을 설파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았더라.) 내가 진 말빚만 크다. 그동안 풀어놓은 말빚을 다음 생으로 가져가지 않겠다. 모두 없애라. 사리 같은 거 찾지도 마라. 부끄럽다.”

# 그렇게 말을 닫은 채 스님은 이렇게 다짐했으리라. “다음 생에서는 내가 길태가 되어 태어나리라.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하는 그 길태의 삶을 내가 대신 살리라. 그 길밖에 교화의 길이 없다. 죽인다고 없어지랴, 화학적 거세를 한다고 사라지랴, 감옥에 가둔다고 나아지랴. 높은 경지의 가르침으로도 고행 어린 수행으로도 안 되는 것이니 내가 대신 길태 되어 사는 길뿐. 도리가 없다. 사실 우리 모두는 길 없는 길에서 태어나 저마다 삶의 길을 내야 하는 길태들 아닌가! 이제 시간과 공간을 버려야겠다. 내가 길태 되러 가야 하니….”

정진홍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