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문화산책] 16. 장례 풍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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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정주영(鄭周永)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빈소에 북측 고위 당국자들이 조문을 와 관심을 끈적이 있다. 그러면 북한의 장례 문화는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면 남북한 사회에서 가장 완강하게 변하지 않은 풍습의 하나는 장례가 아닐까 생각한다.

며칠 뒤에 있을 올해 한식에도 많은 사람이 조상들의 무덤을 찾아 겨우내 무너진 곳을 보수하고 조상에게 절을 할 것이다.

북한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남한에선 다소 퇴색하고 있는 한식 행사가 북한에선 오히려 성행하고 있다.

이동하느라 열차가 콩나물시루가 되며, 평양 등 대도시에는 성묘객들로 교통이 혼잡해진다. 성묘.차례 등 조상 숭배 전통도 여전하다. 특히 평양에선 혁명 열사에 대한 추모도 겸한다.

북한에선 화장보다 무덤을 더욱 선호한다. 그러나 아무 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지정된 공동묘지나 마을 산을 이용한다.

묘지 확대로 인한 토지 이용 상의 문제를 고려해 묘지의 집단화를 추구하고 있는 것이다.

화장을 기피하고 묘지를 선호하는 한민족의 일반적인 관념은 북한 사회라고 다르지 않다. 다만 남한에 비해 산이 많을 뿐 아니라 인구가 적은 탓에 묘지로 인한 국토 잠식 문제가 덜 심각하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유교식 장례 절차에 대한 관념이 깊이 박혀 있는 것도 남북한 문화의 공통점이다. 중국이 사회주의 국가지만 전통적인 무덤 풍습을 타파하고 화장으로 돌아선 것과 대비된다.

다만 북한에서 장례 풍습의 세밀한 부분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 풍수를 짚어 명당자리를 찾지는 않는다. 비석도 예전처럼 한자로 새기는 경우가 사라지고 한글로 새긴다. 개인적으로 돈을 들여 사치를 부리는 석물을 세우는 경우는 없으며 소박하게 이름과 생몰(生沒)연대를 새긴 비석을 세운다.

상례복을 지어입거나 굴건제복을 하는 것도 일찍이 사라졌다. 팔에 검은 천을 둘러 예의를 갖추는 정도다.

절을 하는 방식은 전통적인 엎드려 절하기와 선채로 허리를 굽히는 간편한 절이 함께 통용된다.

장례에 필요한 소요 품목은 정부가 약간 지급한다. 농촌에서는 협동농장 주관으로 장례를 치르는데, 이는 전통사회의 상호 부조와 비슷하다. 남한의 일부 빈소에서 고스톱으로 밤을 새우듯이 이북에서도 주패놀이를 하며 밤샘을 한다.

남북한이 많은 변화를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통적인 효의 관념이나 장례 풍습은 본질적으로 그다지 변하지 않은 점이 신기할 정도다.

주강현 <우리민속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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