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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141> 소싸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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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8면

17일 경북 청도군에서는 소싸움축제가 열려 닷새 동안 계속됩니다. 전국의 싸움소들이 콧김을 내뿜으며 머리를 맞대고 힘을 겨루는 한판 경연장입니다. 소싸움대회는 3월 청도를 시작으로 11월까지 전국 11곳에서 개최됩니다. 청도 소싸움축제는 그중 가장 규모가 큰 대회입니다. 소싸움의 유래와 경기 방식, 훈련 과정, 나아가 상설 소싸움경기장을 짓고도 돈을 거는 우권(牛券) 발매가 늦어지는 속사정 등 소싸움의 모든 것을 알아보겠습니다.

송의호 기자

싸움소 전국에 1000여 마리 … 앞다리 짧고 몸 길어야 싸움 잘 해

국내의 소싸움이 언제 시작됐는지는 분명치 않다. 전문가들은 농경문화가 정착될 무렵 생겨났을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소가 모여 풀을 뜯다가 서로 머리를 맞대고 힘을 겨룰 때 소 주인이 응원한 게 소싸움으로 발전했다고 추정한다. 관련 기록으로는 1909년 위암(韋庵) 장지연이 발표한 ‘진양잡영’ 12수 중 소싸움 시가 있다. 또 34년 발행된 우표에 소싸움 그림이 등장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소싸움이 공식적으로 폐지됐다. 일제가 민족을 단합시키는 행사로 본 것이다. 명맥을 유지하던 소싸움은 광복과 함께 부활됐다. 70년대 중반부터는 민속놀이로 자리 잡았다.

이어 청도군 이서면 서원천 변에서 90년 영남민속투우대회가 열렸으며 95년에는 전국민속투우대회로 발전했다. 민선 지방자치시대가 열리면서 소싸움은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청도군은 99년 처음으로 소싸움축제를 열었다. 청도군은 일본 싸움소 3마리를 데려오고 미군 로데오 경기를 기획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다. 문화관광부는 99년 청도 소싸움을 ‘한국의 10대 지역 문화관광축제’로 선정했다. 이후 언론이 관심을 가지면서 청도는 진주보다 역사는 짧지만 소싸움축제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한국자치발전연구원은 청도 소싸움축제를 2008년부터 2년 연속 ‘대한민국 대표축제’ 전통문화부문 대상으로 선정했다. 지난해 청도 소싸움축제 기간에는 내·외국인 53만여 명이 청도를 찾았다.

경기시간 제한 없이 단판승부

지난해 실내인 청도상설소싸움경기장에서 처음 열린 소싸움 모습. 이전에는 야외에서만 경기가 진행됐다. 승부는 싸움소끼리 서로 공격하다 먼저 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쪽이 지게 된다. [청도군 제공]

싸움소는 몸무게에 따라 체급이 정해진다. 가장 무거운 특갑종(810㎏ 이상)부터 ▶갑종(730∼810㎏ 미만) ▶특을종(695∼730㎏ 미만) ▶을종(650∼695㎏ 미만) ▶특병종(615∼650㎏ 미만) ▶병종(615㎏ 미만) 등 6체급이 있다. 경기는 체급별로 소 주인이 직접 추첨해 대진표를 짠다. 경기는 1대 1 단판승제로 진행된다. 그래서 소 주인은 대진표 추첨에서 신경전을 벌인다. 승부는 싸움소끼리 서로 공격하다 먼저 머리를 돌려 달아나는 쪽이 진다. 경기 시간은 제한이 없으며 한 마리가 질 때까지 계속된다. 우승하려면 체급별로 4~6번 이겨야 한다.

싸움소 종자가 별도로 있는 것은 아니다. 소 주인은 송아지 수놈 중 싸움소가 될 만한 놈을 골라 거세하지 않고 집중 훈련시킨다. 대체로 눈이 작고 앞다리가 짧으며 몸체가 길어야 한다. 싸움소가 되려면 두 살은 돼야 하며, 최고 체급인 갑종 경기에 참가할 때까지 보통 5∼8년 동안 출전하며 경력을 쌓는다.

청도군에는 전국 시·군 중에 가장 많은 200여 마리의 싸움소가 있다. 이 중 150여 마리가 소싸움대회에 나간다. 전국적으로는 싸움소가 1000여 마리를 헤아린다. 싸움소 중 경남 의령의 ‘범이’, 경북 청도의 ‘번개’ 등은 한동안 내리 1등을 차지하며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지금은 실력이 평준화 돼 절대 강자가 없는 상태다.

보양식으로 뱀·미꾸라지 먹여

싸움소는 농사일을 하지 않는다. 대신 체력을 단련하고 싸움 기술을 연마한 뒤 대회에 나간다. 감독 격인 소 주인은 소의 지구력과 근력을 끌어올리는데 주력한다. 험난한 산길을 달리도록 하고 타이어 끌기도 연습시킨다. 또 통나무와 흙더미 박기 등을 통해 싸움 기술을 익히게 한다.

올해 청도 소싸움대회에는 갑종 1등 600만원 등 1억5100만원의 상금이 걸려 있다. 싸움소가 경기에서 이기면 주인에게 상금을 안겨 준다. 우승한 소의 몸값은 치솟아 오른다. 대회에 출전하는 소의 몸값은 평균 2000만원 정도 이지만 우승하면 8000만 ~1억원까지 올라간다. 싸움소는 보리쌀·콩·밀 등을 볏단과 함께 끓인 여물을 주로 먹는다. 이건 기본이다. 경기가 임박하면 주인은 한약이나 약초·미꾸라지·뱀 등 보양식을 소에게 먹인다. 그러나 경기 직전에는 체급 조절을 위해 음식 섭취량을 줄인다.

150마리의 소를 사육하는 청도군의 예병권(49)씨는 한때 싸움소 8마리를 키웠으며 지금은 2마리를 보유하고 있다. 예씨의 싸움소 ‘아만세’는 2008년 청도 소싸움대회에서 1등을 해 상금 400만원을 탔다. 예씨가 보리·콩·도라지·십전대보탕 등을 아만세에게 먹이는 데 한 해 300여만원이 들어갔다. 아만세는 지난 겨울 경남 창녕으로 전지훈련을 다녀왔다.

밀치기·목치기·뿔걸이 … 기술 다양

싸움소가 경기장에 도착하면 먼저 몸무게를 측정해 체급을 구분한다. 일찍 도착한 싸움소는 모래판에 적응하며 몸을 푼다. 청도 상설소싸움경기장은 돔형 지붕의 실내 경기장이어서 사전 적응 훈련은 필수적이다. 싸움소는 경기 전날 뿔 깎기를 통해 몸 만들기를 마친다. 경기에 참가하는 모든 소 주인이 서로 도와 뿔을 깎는 것이 전통이다. 외지에서 온 싸움소는 청도투우협회가 마련한 간이 우사에 머물며 안정을 취한다.

싸움소들은 경기장에서 다양한 기술을 구사한다. 밀치기는 온 힘을 다해 밀어붙이는 기본 기술로 체력과 뚝심을 필요로 한다. 옆치기는 상대 소의 옆구리 쪽 배를 공격하며 경기를 마무리하는 결정적인 공격술이다. 목치기는 목을 공격하는 고도의 기술이다. 뿔치기는 뿔을 좌우로 흔들어 상대의 뿔을 치며 공격해 제압하는 기술이다. 뿔치기와 달리 뿔걸이는 상대방의 뿔을 걸어 누르거나 들어올려 목을 꺾는 적극적인 공격술이다. 이 밖에 뿔 대신 정면에서 헤딩하며 머리를 공격하는, 소싸움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머리치기 기술 등이 있다.

원래 황소가 싸우는 것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암소를 차지하기 위한 영역 확보가 목적이다. 황소가 싸움판에 들어가면 그 순간 맑은 눈망울은 매섭고 붉은 빛이 돌며 ‘음메’하는 소 울음은 마치 대형 화물선의 뱃고동처럼 경기장을 뒤흔든다. 두 마리가 머리를 맞대다 잠시 떨어지면 소 주인은 옆에서 이름을 부르며 “나가자! 쳐라”하면서 소리를 지른다. 훈련된 싸움소는 작전지시에 따라 돌격하며 뿔로 상대방을 강타한다. 주인은 ‘선수’를 만질 수 없고 옆에서 작전지시만 내릴 수 있다.

소싸움은 스페인이나 멕시코에서 열리는 투우와 비교된다. 하지만 투우와 소싸움은 완전히 다르다. 스페인 투우에선 경기 시작 뒤 미친 듯이 날뛰는 소는 이미 단도에 찔려 있다. 투우사는 투우의 숨통을 단번에 끊어 놓아야 경기가 끝이 난다. 이에 비해 한국의 소싸움은 싸움소끼리 머리를 맞대고 겨루는 경기로 힘과 기량, 다양한 기술로 승패를 가른다.


청도 소싸움장은 돔형 실내 경기장

청도 소싸움은 청도군 화양읍 삼신리에 들어선 상설 경기장에서 열린다. 국내에 하나뿐인 돔형 실내 경기장이다. 상설 소싸움장은 6만5835㎡(1만9900평)의 터에 경기장과 우사 등 소싸움 시설만 3만1571㎡(9500평) 규모다. 공사비만 640억원이 들었다. 돔형 지붕 덕분에 비가 와도 경기를 할 수 있다. 천장을 열 수도 있다. 관람석은 1만1245개. 둥글게 배치된 관람석 가운데 지름 31m의 모래밭이 소싸움장이다. 한 경기가 끝나면 관람석에서 경기장 쪽으로 스프링클러가 자동으로 물을 분사해 소싸움장의 모래 먼지를 가라앉힌다.

청도 상설 소싸움경기장은 소싸움 애호가들이 이길 것으로 예상하는 소에 돈을 거는 베팅 사업 목적으로 지어졌다. 2002년 소싸움대회의 관람 열기와 축산 발전을 위한 ‘전통 소싸움 경기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면서다. 경기장은 2007년 완공돼 지난해 이곳에서 처음 소싸움축제가 열렸으나 아직도 베팅용 우권은 발매되지 않고 있다. 그동안 공사비를 둘러싼 법정 다툼 등 몇몇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경기장을 지은 한국우사회(대표이사 기화서)와 상설 소싸움경기 시행자인 청도공영사업공사(사장 김태율)가 시설 사용료를 둘러싸고 이해가 엇갈려 개장이 늦춰지고 있다. 우권 매출액과 입장료 수입의 얼마를 경기장 소유자인 우사회가 차지하느냐가 관건이다.

청도군은 우사회가 법 테두리를 넘어서는 선까지 사용료를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출자 주주 4200여 명으로 구성된 우사회는 9월 개장을 목표로 청도군·공영공사와 현재 협상을 벌이고 있다. 공영공사는 상설 경기 운영에 필요한 예산과 전산 장치, 인력 확보를 이미 마쳤다. 수입금 배분 문제가 개장의 마지막 걸림돌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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