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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은행 임원 임기 2년 연장 정교한 실적평가 병행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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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임원들이 1년 단위의 계약에 묶여 있는 상황에선 단기 승부로 흐를 수밖에 없다. 그의 지휘를 받는 부서장과 직원들도 이를 따라야 한다. 시중은행의 한 직원은 “새로 부임한 부행장에게 장기 계획을 짜서 올렸더니 ‘1년 안에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을 찾아오라’는 핀잔을 들었다”고 말했다. 금융위기가 닥치기 전 은행들이 너도나도 대출을 늘리고, 위험한 유가증권에 투자한 것도 단기 성과주의와 무관치 않다.

전국은행연합회와 금융당국이 마련한 ‘성과 보상체계 모범규준’에 은행 임원의 임기를 2년간 보장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도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은행권은 올해 안에 이에 따른 구체적인 성과 보상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문제는 실적 평가와 성과 보상체계다. 이를 제대로 손질하지 않으면 임기를 늘려준 게 아무 의미가 없다. 1년 단위의 단기실적 평가를 계속한다면 폐단은 그대로 남는다.

최근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은 “은행은 참 편한 업종”이라고 말했다. 인허가권을 쥔 정부가 새 경쟁자가 나오는 걸 막아주질 않나, 외화 자금이 모자라면 지급 보증을 해주질 않나, 그래도 부실이 생기면 공적자금을 넣어주질 않나…. 이런 보호막 속에서 예금과 대출의 금리 차이만 따먹으며 이익을 낼 수 있으니 ‘편한 업종’이라는 얘기다. 또 경기만 좋아지면 은행들은 막대한 수익을 올린다. 누가 경영하든 그런 구조적 수혜를 받는 것은 똑같다. 그런 이익을 은행 임원들의 성과로 포장하는 게 제조업체 임원의 눈에는 불합리해 보일 법도 하다. 경기회복이 순조로우면 대형 은행들은 조 단위의 순이익을 낼 전망이다. 은행 임원들은 상당한 보수를 챙길 수 있다. 그들이 정말 잘해서라면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구조적 보호막 속에서 얻은 이익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과도한 보상’만 2년간 보장해주는 꼴이 된다. 이는 모범규준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다. 임원의 성과를 제대로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김원배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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