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고시안 되레 독과점 조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공정거래위원회가 28일 규제개혁위원회로부터 '폐지됐던 내용을 부활하는 이유 등을 보완하라' 며 반려받은 '신문고시안' 이 객관적 기준도 없이 졸속으로 만든 것이라는 비판이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또 무가지.경품제공 등을 통한 신문시장의 과당경쟁을 없애기 위해 정부의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일부 나오고 있으나 결국 자율시장으로 가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견해가 많다. 고시안은 신문 무가지(無價紙)를 유가부수의 10% 내에서 제한하는 내용 등을 담고 있다.

허행량(許倖亮.매체경제학)세종대 교수는 "독과점을 막겠다는 것이 최대 목적인 공정위안은 역으로 무가지 차이만큼 판촉을 통해 독과점을 조장하는 모순이 있다" 며 "10% 내 무가지 인정 규정은 객관적 기준이 없고 경제적 파급효과도 생각하지 않은 졸속안" 이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탈규제 추세 속에서 시장규제를 풀어야 할 공정위가 '신문고시' 를 통해 도리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정부의 논리부재로 앞뒤가 안맞는다" 고 말했다. 그는 또 "무가지 10% 이내 규정은 판촉을 어렵게 만들어 신문사가 새로 생기는 것(신규 진입)을 막을 수 있다" 고 우려했다.

특히 문화관광부.신문협회.광고주협회.언론개혁시민연대 등과 의견을 교환한 뒤 정했다는 고시안이 규제개혁위로부터 보완요청을 받아 정부가 과연 의견수렴을 제대로 했는지 의구심이 일고 있다. 특히 무가지 비율을 규제하려는 것에 대해선 학계에서도 의견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류한호(柳漢虎.신문방송학)광주대 교수는 "무가지의 양적 규제는 자의성이 강한 만큼 비율규제가 그나마 바람직하다" 고 주장했다.

그러나 세종대 許교수는 "무가지 규제는 비율만으로 할 것이 아니라 양도 함께 감안하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 고 밝혔다.

경품(판촉물)제공 부분도 논란을 빚고 있다. 공정위안에는 신문대금의 10%를 넘는 경품을 제공하지 못하도록 돼 있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한국신문협회 판매협의회가 판촉물을 전혀 쓰지 말자고 자율 결의한 뒤 대부분의 신문사가 이를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애쓰고 있는 마당에 공정위가 경품 제공의 길을 터놓는 것은 과열 판매경쟁을 부추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공정위의 신문시장 규제 움직임을 지지하는 학자들도 있다. 주동황(朱東晃.신문방송학)광운대 교수는 "무가지.경품제공 등으로 과열된 시장경쟁을 바로잡기 위해 정부규제가 필요하다" 며 "신문업계에서 무가지 비율의 적정성을 놓고 논란을 벌이기보다 발행 부수 등 정확한 자료를 스스로 밝혀야 한다" 고 말했다.

광주대 柳교수도 "공정위안은 신문시장의 질서를 세우는 데 도움이 될 것" 이라며 "유통망의 경우 본사가 직접 지국을 지배하는 관행을 바꿔야 한다" 고 주장했다.

그는 또 "한 지국에서 2~3개 신문을 보급하는 판매 자유화(공동판매제)를 제도화하는 것은 유통측면에서 바람직하다" 고 밝혔다.

그러나 강하구(姜河求)한국신문협회 판매협의회장은 "공동판매제는 유통조직이 신문을 장악함으로써 신문 독립성을 해칠 가능성이 크고, 나아가 정치권 등 외부단체로부터 신문이 독립성을 지키기 어렵게 할 것" 이라며 "결국 독자의 구독권리와 편의에 해를 끼치게 된다" 고 밝혔다.

또 공정위가 신문시장에 어떤 파급효과를 가져올지 충분히 예상하지 못한 채 신문사의 판매.광고를 규제하는 '신문고시안' 을 서둘러 추진하고 있다는 의혹도 일고 있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각종 불공정행위가 군소신문의 퇴출을 막고있다" 며 "신문시장도 다른 시장과 마찬가지로 퇴출이 있어야 한다" 고 말했다.

또 다른 고위 관계자는 "군소신문은 고시안이 대형 신문사의 시장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듯하나 실제 어느 쪽에 유리한지는 따지기 어렵다" 고 밝히기도 했다.

김기평.서경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