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에 참여한 삼성디자인학교(SADI) 학생들이 작업실에 모두 모였다. 왼쪽부터 김나래·한현민·최훈성·신효섭·김윤하·배건·김은정·정수미·허형석.
글=이도은 기자
컨셉트보다 디자인이 우선이다
“예쁘다. 근데 한국적이구나 해야 하는 게 정답인 것 같아요. 한국적이면서 예쁜 걸 찾으려고 하던 데서 발상을 바꿔야 하는 거죠.”
김나래(22)양의 말에 SADI 학생들은 모두 동감했다. 신효섭(23)군은 “디자인에 전통만 앞세우면 조악한 기념품이나 개량 한복밖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한국은 몰라도 누구나 보면 예쁘다고 말할 수 있는 패션을 만들자고 했다. 이 과정에 산수화가 그려진 스카프나 한글 티셔츠 같은 직설적 디자인은 본보기가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찾아보니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디자인의 모델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했다. 그들이 찾아낸 답은 명도와 채도를 달리한 오방색, 직선과 곡선의 조화 같은 이미지에서 디자인을 구현해내는 것이었다.
전통 원단의 한계를 극복하라
한글 자음 ‘ㅎ’자를 스카프의 참장식으로 만들었다.
진짜 외국인 시각을 알아야
학생들은 해외 경험이 많았다. 중국 상하이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김은정(22)양은 “외국인 친구들이 말하는 한국의 미와 우리의 시각이 다르다”고 했다. “우리는 흔히 여백의 미, 수묵화 같은 흑과 백을 생각하지만 외국인은 오히려 색동 같은 화려한 색깔과 무늬를 떠올리더라고요.”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도 강한 컬러를 쓰면서도 세련되게 표현하는 데 중점을 뒀다. 정수미(23)양은 경복궁에서 만났던 외국인 얘기를 꺼냈다. “한복 치마가 바람에 휘날릴 때 실루엣이 너무 아름답다고 하더라고요. 우리에겐 너무 익숙해 되레 놓치고 있는 거죠.”
한국적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학생들은 과제작품을 만드는 데 4~5일 걸렸다고 했다. 대신 아이디어 개발을 위한 자료 조사에 2주 이상을 투자했다. 한국 복식을 복습한 건 기본이었다. 민화와 도자기를 다시 보고, 인사동을 뒤졌다. 일상에서 그냥 지나치던 우리의 음식·장소등을 허투루 여기지 않게 됐다. 알면 알수록 소재는 점점 많아졌다. 그래서 프로젝트 이후 욕심이 더 생긴 이들도 있다.
한복 동정에서 모티브를 얻은 허형석(24)군은 “졸업 때까지 계속 한복과 접목한 디자인을 만들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김나래양은 자개 같은 전통 부자재를 다양하게 응용해 볼 생각이다. 산호·호박 같은 전통 보석으로 귀여운 액세서리를 만들어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이번 프로젝트를 지도한 고석희 교수는 그들의 다짐에 말을 더했다. “이제 한국적 디자인이 전통에 머물 필요는 없어요. 남대문시장·붉은악마 같은 동시대의 한국도 소재가 돼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