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리스트의 선택] 현대중공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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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2면

조선사들에 2009년은 악몽이었다. 일찌감치 따 놓은 일감으로 먹고살았지만 신규 수주는 완전히 말라붙었다. 올해는 경기 회복과 함께 조선 시장도 살아날 전망이다. 지난해 말부터 슬금슬금 오르기 시작한 중고 선박 가격이 이런 조짐의 시작이다. 중고 배값이 오른다는 것은 당장 짐을 나를 배가 더 필요하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은 결국 신규 선박 발주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올해 조선 업황은 지난해보다 나아지겠지만 1년 동안 굶주린 조선사들의 허기를 채울 정도는 아니다. 세계 조선사들의 건조 능력에 비하면 수주량이 많이 부족할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세계 조선업계에선 구조조정이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근거는 이렇다. 대형 조선사들은 최근까지 이미 따놓은 일감으로 먹고살았다. 하지만 지난해 수주 가뭄으로 올해부터는 일감이 떨어지게 된다. 대형 조선사들은 올해 수주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중소 조선사의 몫이었던 중형 선박 건조 시장에까지 뛰어들 것이다. 결국 이 시장에서 저가 수주 경쟁이 벌어질 것이다. 이 와중에 재무구조가 허약한 중소 조선사들은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아직 정상화되지 못한 선박금융은 이런 식의 구조조정을 가속화시킬 요소다. 배를 만들어 달라고 할 때 선주들도 대출을 받지만 조선사들도 금융회사의 보증을 발주처에 제공해야 한다. 대금 일부를 앞서 받은 조선사가 휘청거리면 발주 회사에도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데 선박 금융이 정상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높은 중소 조선사는 보증을 얻기 쉽지 않다. 중소 조선사로선 올해 대형사와의 치열한 가격 경쟁에서 이기는 것은 물론 선박 금융의 높은 문턱까지 넘어야 구조조정의 파고를 넘을 수 있다.

올해 같은 상황에선 한국과 중국의 조선사들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 한국은 기술과 인지도에서 세계 최고이고, 중국은 가격경쟁력과 정부 지원이라는 무기를 갖추고 있다. 이 두 나라의 조선사들이 글로벌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것이 올해 조선업계의 구도다.

한국에 유리한 상황도 있다. 원유·천연가스 시추설비처럼 한국이 강점을 가진 해양플랜트 분야 발주가 늘어날 것이라는 점이다. 금융위기로 유가가 바닥을 헤매던 2008년 말부터 지난해까지 해양플랜트 발주는 거의 중단됐다. 그러나 유가가 오르면서 미뤄뒀던 프로젝트들이 올해 쏟아질 것으로 보인다. 원유·천연가스 시추설비 발주가 많아지면 자원을 캐낸 뒤 나르는 탱크선 발주도 덩달아 늘어난다. 이 역시 한국이 강점을 가진 분야다.

국내 조선업체 중 현대중공업을 최우선주로 내세우겠다. 세계 최대의 조선회사인 현대중공업은 올해 발주가 쏟아질 해양플랜트 분야의 강자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육상 플랜트와 발전사업도 쭉쭉 뻗어나가고 있다. 최근에는 사우디아라비아 국영전력회사가 발주한 리야드 복합화력발전소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앞으로는 발전 사업 분야의 비중이 조선 부문을 앞지를 가능성도 크다.

또 현대중공업은 풍력·태양광 발전 등 신재생에너지 분야도 성장동력으로 키우고 있다. 사업 분야가 조선과 해양플랜트뿐인 국내 다른 대형 조선사에 비해 훨씬 다양한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다. 이런 현대중공업에 올해는 세계 최대의 조선업체에서 종합 중공업 회사로의 도약과 재평가가 기대되는 시점이다.

성기종 대우증권 소재·중공업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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