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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칼럼] 오 주교의 서울 예수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7면

프랑스 생드니 교구의 올리비에 드 베랑제 주교, 그는 2002년 월드컵 축구 배지를 달고 다니면서 "우리나라를 자랑해야지요" 라고 스스럼없이 얘기한다.

그가 자랑하려는 '우리나라' 는 한국이다. 외환 위기로 한국 경제가 곧 망할 것으로 프랑스 언론이 보도할 때도 그는 "나는 한국인을 잘 압니다. 그들은 이 난관을 딛고 일어설 것입니다. 나는 확신합니다" 라는 말과 글로 저들을 안심시키고 우리를 격려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권유로 1976년 한국에 와서 93년 프랑스로 돌아가기까지 17년 동안 그는 주로 서울 영등포 지역에서 가톨릭노동청년회(JOC)를 지도하며 노동 사목에 헌신했다.

그가 왜 오영진으로 - 적어도 배영진이 아니고 - 창씨 개명했는지 그 이유는 나도 모른다. 그의 저서 『서울의 예수, 생드니의 예수』(일빛.2000)에도 설명이 없다.

*** 남에게 나를 여는 선교

글자를 좌우로가 아니라 위아래로도 읽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만큼 저자에게 동양 문물은 아주 생소했었다. 그 생소한 차이를 저자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이해하는 단서이자 선교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선교란 다른 문화에 자신을 열고, 그 문화 속에 살아 있는 활력에 일치되고자 노력하는 것" (33쪽)이란 그의 자세는 선교 지역의 미개하고 몽매한 무리를 주의 말씀으로 구원하겠다는 따위의 오만과는 크게 다르다.

결혼식 다음날 신랑을 사우디아라비아로 떠나보내고 시부모를 섬기는 이 땅의 효와, 도중에 아들을 잃고 사흘을 찾아 헤맨 부모에게 "왜 나를 찾으셨느냐" 고 대드는(?) 열두살 소년 예수의 불효(!)를 비교하면서, 그는 "복음의 자유의 메시지가 아시아 문화의 한가운데로 천천히 스며드는 속도에 보조를 맞춰야만" (61쪽) 한다는 말로써 현실의 제약을 순순히 인정한다.

1784년 이승훈의 세례부터 2백17년의 역사에 불과한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빵을 밥으로 바꾸는 것이 그리 급한 것은 아니기" (29쪽) 때문에 서두르기보다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제사조차 전혀 문제가 아니다. 이탈리아의 예수회원 마테오 리치가 16세기 중국에서 목격한 제사는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의 연장이었다. 그러나 뒤에 들어온 도미니크회와 프란체스코회의 스페인 선교사들은 제사를 우상 숭배 의식으로 보았다.

유식하고 지루한 신학 논쟁을 거쳐 1742년 교황 베네딕트 14세는 제사를 공식적으로 단죄했으나, 1939년 비오 12세는 반대로 이를 복권시켰다.

저자 역시 "제사 논쟁은 교회가 다른 문화와 만나는 데서 범했던 오류 가운데 가장 전형적인 예" (51쪽)라고 한탄하면서, 이 제사 유죄 선고로 흘린 조선 순교자들의 피를 안타까워한다.

실제로 그는 제사 때문에 자녀의 세례를 반대하던 어느 집 제사에 참석함으로써 부모의 오해를 풀어주고 그 집안의 친구가 된다.

저자는 젊은 한국 교회가 내뿜는 사도적 열정을 높이 평가한다. 프랑스에서 찾기 힘든 신앙의 참모습을 때때로 한국에서 다시 대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관심법' 에 걸린 한국 교회는 부끄러운 일들도 많다.

"너그러운 신자들 덕분에 교회가 나라에 비해 상당히 부유한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 (24쪽)는 얘기 따위는 접어두자.

"한국의 사제들은 개신교 목사들이 그렇듯 대체로 중.상류층에 속한다" (97쪽)거나 "프랑스의 본당 신부들은 한국의 사제들에 비해 생활 수준이 낮다" (99쪽)는 지적도 특별히 새로울 것은 없으나, 그래서 "한국의 사제들은 흔히 '장' 으로서, 권위자로서 일반인들의 생활에 충분한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처럼 처신하는 경우가 많다" (97쪽)는 고언은 충분히 새겨들어야 하리라.

저자의 노동 사목 체험은 우리가 쉽게 잊어버린 가슴 아픈 얘기들을 많이 전해준다.

이를테면 군사 독재 시절 아버지의 치료비 때문에 중앙정보부 요원에게 돈 10만원을 받고 정보를 팔았다고 미사 중에 울먹인 젊은 노동자의 참회라든가, 폐암 재발 고교생이 신앙을 거부하고 자신의 유해를 동해에 뿌려달라고 부탁했을 때 저자가 느꼈던 무력감 등이 그러하다.

그리고 "팔꿈치에서 잘려 나간 팔을 옷으로 가린" 네팔 청년과 "손가락 네 개가 잘려 나가 오른손을 붕대로 감은" (1백39쪽) 벵골 근로자가 물색없이 내민 저자의 손을 마주잡지 못하고 환한 웃음만 보내더라는 얘기에 나도 모르게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들도 존중받을 사람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영혼 없는 자본주의' 가 거절하는 것이다.

*** 그들도 존중받을 사람

한국 천주교회는 올해 신유박해 2백주년을 맞는다. 중국인 신부 주문모가 순교하고 이승훈과 정약종이 치명(致命)했던 이 박해를 계기로 한국 교회는 방방곡곡의 숯막과 옹기가마를 통해 전국으로 퍼졌고, 선비 중심에서 서민의 교회로 다시 태어난다.

사제도 없고 선교사도 없이 출발한 한국 가톨릭의 강인한 생명력과 그 부활에 저자는 커다란 기대를 걸고 있다.

그리고 『서울에서 생드니로의 복음』이란 이 책의 원제대로 그것을 프랑스로 수입했으면 하는 간곡한 소망이 행간에 언뜻언뜻 비친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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