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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션 와이드] '영감놀이굿' 심방 이중춘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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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기력이 떨어지고 호흡이 가빠질 나이지만 굿판이 벌어지면 그의 목소리는 마치 젊은이의 그것과 같다.

"무자 ·기축년 4 ·3에/아버지 ·오빠 세상을 하직하고/…/시집간 날 남편 여의고/고씨 남편 새로 얻어/다섯 오누이 솟아나/청춘에 남편은 또 세상을 뜨니/욕은(다큰)아인 업고/어린 아긴 안고/…."

굿이 활기를 띠면서 굿판 주위에 있던 아이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흐른다.

제주의 대표적인 '심방' 이중춘(李中春 ·70 ·제주도 북제주군 구좌읍 행원리)씨.

그는 제주의 대표적인 '남자 무당'으로 50년 가까이 제주무속을 잇고 있다.'정통'을 고수하면서 25대 째 외가 혈통을 이어받아 무당일을 하는데다 한달에 한번 꼴로 일본에서 원정굿판을 벌이기도 한다.

그는 제주도 지방문화재 2호인 영감놀이굿의 유일한 기능보유자로 제주의 대표적 민속축제인 '한라문화제'의 단골 출연자이기도 하다.

그의 무속 입문 내력을 따라가보자.무당 신분으로 자식을 키우던 어머니를 그는 무척이나 싫어했다.굿판에서 신들린듯 춤을 추고,노래를 토해내던 어머니를 멀리 하고 제주시에서 중학교를 다닐때인 1948년.4·3사건이 터졌고 그는 19살의 나이로 학교를 중단,해병대에 입대했다.

6 ·25전쟁을 겪고 24살이 돼서 고향으로 돌아왔다.

어느날 이모집에서 어머니가 집전한 굿판을 보다 자신도 모르게 무의(巫衣)를 달래서 입은 것이 무당일의 시작이었다.

"모르쿠다(모르겠습니다).'신(神)질'입쥬(이죠).조상님네 부르심대로…."

하지만 천대받는 게 싫었고 남자 망신이라는 생각이 머리속에 가득했다.하지만 그만 두려고만 하면 살이 바짝 마르면서 앙상한 뼈를 드러내다 심방일을 시작하면 씻은 듯이 나았다.

李씨 외가의 무속법통은 고려 말 탐라국의 '신촌(북제주군 조천읍)큰물당 金할머니'를 시조로 이어졌다.할머니는 영험이 커 당시 마을에 병자조차 없었다는 말들도 전해지고 있다.

이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李씨 어머니인 '韓심방'이 그 영험을 이어받아 여러 사람을 살려냈다고 믿는다.

여러 곳에 초빙됐던 어머니와 달리 그는 초창기에 천대와 비난에 시달렸다.근대화 물결이 한창이던 60년대 그의 집은 벌집이었다.틈만나면 경찰이 찾아와 "무구(巫具)를 내놓으라"고 으름장이었고,당(堂)에 발길질을 해대는 것은 예사일이었다.

그때마다 그는 "마을사람들의 한(恨)을 풀어준 적은 있지만 누구에게도 피해를 준 적이 없다"며 버텼다.

李씨가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80년대 들어서다.'국풍'(國風)바람이 한창이던 81년 그는 서울에서 제주굿의 진수를 보여줬다.

알아듣기도 어려운 제주사투리가 10시간 넘게 이어지고 신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듯한 애절한 그의 육신은 가장 '제주다운' 민속의 하나로 대접받았다.

그는 80년대 후반 '당(堂)굿'보존회 회장으로 나서는등 제주굿의 명맥잇기에 들어갔다.

'선무당이 사람잡는다'는 말을 듣기 싫어 '원칙대로' 굿을 하지 않는 '심방'을 만나면 불같이 성을 내고 나무랐다. 북가락, 대영(징)장단, 설쇠(놋그릇을 엎어 채로 치는 무속악기)소리가 맞지 않아 그에게 내쫓김을 당한 '소미'(小巫 ·큰무당의 집전중 무악을 연주하는 작은 심방)'도 수십명이었다.

"어중이 떠중이가 모두 심방은 아니우다.(아닙니다).사람과 신을 연결해주는 대리인이고,그 덕에 살아지는거지(생계를 유지하지)…. 제대로 굿은 하지 않고 돈이나 밝히니…. "

그는 10여년전부터 '제주굿'의 전통계승작업에 힘을 쏟고있다. 76년 어머니가 돌아가시며 제주굿 계승자로서 물려받은 가문의 상징인 '명도'(심방이 길흉화복 등 일종의 점을 치는 잔 ·잔받침 모양의 물건)를 넘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아들 ·딸 5남매를 두었지만 누구도 그의 뒤를 따르겠다는 자식이 없어 안타까울 뿐이란다. 건너편 김녕마을의 문순실(41)'여심방'이 제자를 자청,전수할 사람이 생겨 그나마 안도하고 있다.

"10년만 더 이시면(있으면) 문심방헌티(에게) 다 물려줄 수 이수다(있습니다). 기록정리 ·보존 모든 걸 물려줄 준비가 돼 이수다.'큰굿'의 원형은 남겨얍쥬(야죠)."

제주=양성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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