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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 방미 외교 전문가 결산 좌담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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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김대중(金大中)대통령과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이번 정상회담은 한.미가 '소중한 동맹' 사이면서도 대북 인식에서는 다른 견해를 갖고 있음을 드러낸 만남이었다.

이런 다른 모습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의 서울 답방을 비롯한 남북, 북.미 관계 전반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관심이 많다.

본사는 관련 전문가들을 초청, 긴급좌담회를 열고 이번 한.미 정상회담의 의미와 과제 등을 짚어보았다.

사회〓정상회담의 성과와 과제부터 정리하죠.

이종석〓대북관계에서 한.미 정부의 국익이 일치하는 것은 애초부터 어려웠습니다. 과거 클린턴 정부 때도 대북 포용정책에 상당한 이견을 나타냈었습니다만 우리는 이것을 해소해 나간 경험이 있습니다.

클린턴과는 다른 이번 부시 행정부와의 정상회담에서 한.미 동맹 재확인, 대북정책 공조 등을 얻어낸 것은 성과이나 제한적이라고 봐야죠. 그러나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알았다는 점은 역설적인 성과입니다.

부시 행정부의 대북정책 형성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습니다. 과제라면 북한이 어떻게 하면 유연하게 나오도록 할 수 있느냐는 것이죠.

정종욱〓회담을 계기로 우리는 새로운 과제를 받았고, 이에 따라 대북정책 방향이 달라질 것이라고 봅니다. 미국의 입장을 고려해 보다 현실적이고 동맹관계에 비중을 두는 방향으로 전략수정이 있을 것으로 예측합니다.

장달중〓동감입니다. 金대통령이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부시 공화당 행정부의 입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론 부시의 생각과 金대통령의 철학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사회〓미국은 우리의 대북 포용정책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북한을 비난합니다. 이런 자세가 한.미의 대북정책에 영향을 미칠까요.

鄭〓정상회담은 구체적인 문제를 협의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에 대한 상황인식을 어떻게 하느냐를 조율하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부시의 생각입니다.

부시의 대북 인식과 상황판단이 극명히 표출된 점은 어느 면에선 성과이지만 동시에 제약요인이나 부담도 될 것입니다.

張〓앞으로 우리의 대북정책은 독일로 치면 브란트 프로세스에서 콜 프로세스로 이동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브란트는 동독에 대해 엄격한 상호주의를 요구하지 않았지만 콜 프로세스는 반드시 개혁을 대가로 원조했습니다.

북한은 반발하겠지만 결국 동조해오지 않을까 합니다. 미국과 북한의 두 입장을 잘 조화하면서 金대통령의 리더십이 작용해야 합니다.

李〓부시가 보여준 대북인식은 공화당 강경파의 사고를 반영합니다. 부시는 반복적으로 '검증' '회의' 같은 말을 했는데, 이는 아직 북한에 대한 클린턴 정부 시절의 상황이나 최근 동향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인식이 그대로 정책화하지는 않고 여과과정을 거칠 것입니다.

북한이 한.미 정상회담에 대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미지수지만 부시 대통령이 기자회견에서 '김정일을 못믿겠다' 고 한 부분 등을 모욕적이라며 반발할 수도 있습니다. 북.미 협상과정에서 상당한 논란이 예상됩니다.

사회〓이번 정상회담에서 NMD문제에 관해 우리측은 여러차례 유감을 표명했는데 향후 또 다른 불씨가 될 가능성은 없나요.

鄭〓이 문제는 대단히 심각한 것입니다. 부시 행정부 출범 이래 처음 열린 정상회담 과정 내내 NMD문제가 비중있게 거론됐어요. 金대통령은 줄곧 이 문제에 매달리다 유감표명까지 했습니다. 이 점은 큰 불행이며 교훈으로 삼아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張〓NMD문제는 레이건 대통령 시대의 전략방위구상(SDI)과 같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 미국이 공산주의와 '대결을 통한 승리' 를 다시 추구하겠다는 것이며 공존정책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입니다.

게다가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국은 강경한 용어를 구사해 뒤로 물러나기 어려울 정도가 됐습니다.

미사일 문제도 타협하기 어려울 정도까지 나가 버렸는데 앞으로 우리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것입니다. 북한이 벼랑끝 전술로 나오게끔 몰아간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듭니다.

李〓미국의 NMD 추진이 동북아와 세계의 불안정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NMD는 북한과도 연계돼 있으며, 동시에 미국 군산복합체의 이익이 담겨 있습니다.

미국의 NMD 추구는 우리 국익 입장에서 대단히 부담스럽습니다. 우리 정부가 '전략적 모호성' 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입장표명을 안 하려 했던 것은 이 때문이죠.

우리는 NMD가 북한과 연동되지 않도록 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됐습니다.

鄭〓NMD와 북한을 분리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입니다. 부시 행정부의 대외정책이 '신(新) 레이건주의' 라고 불리는 배경에는 NMD 추진이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NMD 때문에 불화에 빠지면 한반도 상황이 어려워질 것입니다.

NMD를 둘러싸고 대륙권의 국가들이 사실상 동맹체를 만들고 미국과 일본이 한국을 포함해 반동맹 체제를 형성할 경우 남북을 맺어주는 화해.협력이 아주 어려운 과제로 등장할 것입니다.

사회〓포괄적 상호주의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입니까.

鄭〓미국의 세계적인 전략에서 남북관계를 분리하기 위해 金대통령이 이를 강조한 것이라고 봅니다.

이번 포괄적 상호주의는 클린턴 때보다 다소 경직된 부시 정부의 '엄격한 상호주의' 와 우리의 '비대칭적 상호주의' 를 결합시킨 것입니다. 우리가 정상회담 이후 추진할 대북정책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척도이죠.

북한이 어떻게 나올지, 효율성이 어떨지는 의문스럽습니다.

미국 또한 제네바합의 때는 포괄적 접근이라는 방식을 동원해 해결했지만, 부시 행정부는 '이행' 부분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李〓포괄적 상호주의는 절충을 하자는 것이지 우리 대북정책의 철학적 기조가 바뀐 것은 아닙니다. 미국이 철저한 검증을 요구하고 있지만 북한과 어느 수준에서 절충이 가능한지가 북한과 NMD를 분리할 수 있는 가늠자가 될 것입니다.

張〓북한은 포괄적 상호주의에 호응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미국이 여기에서 끝내지 않고 다음에는 인권 문제를 제기하리라는 데 있습니다.

이같은 과정에서 우리의 고민은 한.미 동맹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남북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해답을 내놓는 것입니다.

사회〓한.미가 이번에 동맹임을 재확인한 것이 혹시 북한을 자극하지 않을까요.

鄭〓미국이 한반도 문제해결에 발목을 잡을 가능성이 큽니다. 동맹은 위계질서가 분명합니다. 부시의 '힘의 외교' 는 북한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특히 이번에 한.미 정상회담에서 모든 문제에 대해 한.미간에 긴밀하게 협의한다는 것은 앞으로 대북문제에 있어 우리의 주도권이 위축되고,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미국에 비토권을 준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李〓한.미 관계는 단순 동맹관계가 아닙니다. 미국이 구축한 세계질서 속에 우리가 들어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미국의 이익과 이해를 우리가 조율해나가는 것이 과제죠. 미국도 우리의 입장을 완벽하게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요.

張〓미국이 지나치게 일방주의적 자세를 보이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전세계가 여기에 대해 분노하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의 외교력으론 어쩔 수 없는 한계가 있는 것이지요.

사회〓한.미 정상회담의 결과들이 2차 남북 정상회담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鄭〓金위원장의 서울 답방이 늦춰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金위원장은 축복받는 분위기에서 서울에 오고 싶어 하며 가시적인 효과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이죠.

李〓金위원장의 답방시기가 늦춰지거나 앞당겨지는 데 영향을 주지 않을 것으로 봅니다. 북한으로선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중요한데 이를 할 수 있는 통로는 북.미 직접 대화와 남북관계 진전밖에 없습니다.

북.미 대화는 미측이 밝힌 대로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므로 남북관계가 미국의 대북정책 결정에 미치는 영향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2차 남북 정상회담은 정상적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며 5월께가 적정하다고 봅니다.

張〓답방은 빨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색깔논쟁이 심화됩니다.

사회〓평화선언을 기본합의서의 '불가침' 부분으로 대체한다는 金대통령의 구상은 무엇입니까.

鄭〓평화선언보다 기본합의서를 다시 가동해 성과를 내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국민의 정부 출범 이후 기본합의서 얘기는 들어갔지만 기본합의서는 남북간에 맺은 매우 중요한 문서입니다.

李〓평화선언이라는 용어는 남북이 한반도 문제를 모두 해결하겠다는 입장으로 미국에 비춰졌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평화선언' 이라는 용어는 주변국들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남북 기본합의서를 활용하는 방안을 생각해낸 것 같아요.

張〓이 문서는 남북이 맺은 최초의 의미있는 문서이지만 북한의 군부 때문에 사문화된 것으로 보는데 이번에 살아난다면 큰 의미를 지닐 것입니다.

사회〓제네바합의의 실천을 놓고 미국의 입장이 오락가락하는 것 같습니다.

李〓단서는 달았지만 제네바합의를 준수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만큼 지킬 것입니다. 현재 미국의 중유공급이 제대로 잘 안되지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북한 미사일 문제가 잘 해결되지 않으면 제네바합의 실천에 역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鄭〓제네바합의 체결 당시보다 상황이 많이 변했지만 미국은 제네바합의는 지킬 것입니다.

정리〓이철희.이영종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참석자>

정종욱(鄭鍾旭)아주대 교수,

장달중(張達重)서울대 교수,

이종석(李鍾奭)세종연구소 남북관계 실장,

사회=안성규(安成奎)통일외교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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