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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아니면 도’로 통하는 존 댈리와 로라 데이비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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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6호 16면

PGA의 존 댈리(왼쪽)와 LPGA의 로라 데이비스는 호쾌한 장타와 위험을 아랑곳않는 공격적인 플레이, 도박을 좋아하는 화끈한 성격까지 닮아 오누이같은 느낌을 준다. [중앙포토]

은빛이 감도는 금발 머리에 위풍당당한 어깨,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장타와 정교한 쇼트 게임.

LPGA와 PGA의 닮은꼴 스타들

지난 2월 21일 열린 LPGA 투어 개막전 혼다 타일랜드에서 6타 차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하던 수잔 페테르센(29)은 1980~90년대 PGA 투어를 풍미한 그레그 노먼의 모습이 연상됐다. 노먼은 전성기, 동료를 압도하는 파워를 지녔다. 키가 1m91㎝인 데이비스 러브 3세는 헬스클럽에서 노먼과 메디슨 공 캐치볼을 한 후 “그 힘을 버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샷의 질도 달랐다. 폴 에이징어는 93년 “내 인생 최고의 경기를 했는데도 4타 차로 노먼에게 졌다”고 허탈해 했다. 그런 노먼은 메이저대회에서 톱 10에 30차례 들었다.

331주간 골프 세계 랭킹 1위를 지켰던 그레그 노먼은 어린 시절 백상어 낚시를 하곤 했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백상어’다. LPGA 투어에서 카리 웹이 ‘여자 백상어’라고 불린다. 호주 출신으로 여자 세계 랭킹 1위에 올랐고 노먼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은 다른 점도 많다. 노먼의 상징은 끝내기에 약하다는 것인데 웹은 그렇지 않다. 웹은 안니카 소렌스탐, 박세리 등 강한 경쟁자들과 맞붙어 메이저대회에서 7승을 했다.

그런 점에서 페테르센이 노먼과 닮았다. 태국에서 페테르센은 당연히 우승해야 했다. 3라운드까지 66-64-68타로 2위 그룹보다 한 수 위의 기량을 보였고 6타 차이가 났는데도 불안해 보였다. 과거 우승을 눈앞에 뒀다가 끝내기를 제대로 하지 못해 무수히 트로피를 날린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페테르센은 2009년 톱 10에 12번, 2008년엔 톱 10에 10번 들었다. 그러나 2년간 22차례의 우승 기회에서 챔피언이 된 것은 단 한 번이다. 이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페테르센의 마음과 샷은 흔들릴 수 있다. 결국 페테르센은 자신보다 키가 16㎝가 작은 미야자토 아이의 추격을 뿌리치지 못하고 역전패하고 말았다.

그 다음 주 열린 HSBC 챔피언스에서도 페테르센은 최종일 전반 9홀에서 버디 4개를 잡으며 공동 선두에 올랐다가 후반에 보기를 기록하면서 우승을 날렸다. 상심이 컸을 것이다. 페테르센은 호주에서 열리고 있는 ANZ 마스터스에는 부상을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다.

노먼은 메이저대회 잔혹사를 가지고 있다. 1984년 극적으로 US오픈 연장에 가서 75타를 치며 무너진 것이 시작이다.

86년엔 아무도 노먼을 막을 수 없었다. 4개 메이저대회 모두 4라운드를 선두로 시작했다. 마스터스에서 그는 마지막 홀 아이언샷을 관중석으로 날리며 그린 재킷을 날렸다. US오픈에서는 또 75타를 쳤다. 디 오픈(브리티시오픈)에서는 5타 차로 압도적인 승리를 차지했으나 버릇은 또 도졌다. 마지막 메이저대회인 PGA 챔피언십에서는 역시 75타를 치며 녹아내렸다. 86년 메이저에서의 화려했던 노먼의 기록은 ‘노먼 슬램’, 노먼은 ‘토요일의 왕자’로 불린다.

그는 불운하기도 했다. 87년 마스터스에서 래리 마이즈의 기적 같은 45야드 칩인 버디에 우승을 빼앗긴 일 등이다. 그러나 96년 마스터스에서 6타 차 선두로 4라운드를 시작했다가 78타를 치며 5타 차로 대패한 것 같은 일도 많다.

노먼은 메이저 2승에 그쳤다. 페테르센은 2007년 상대가 무너지는 통에 첫 우승을 차지하고 여세를 몰아 5승을 했다. 그러나 이후 승리를 날리는 그의 드라마는 다시 계속되고 있다.

ANZ 마스터스에 유난히 강한 로라 데이비스(47)는 풍운아 존 댈리(44)와 인상이 비슷하다. “인생 뭐 있어”라는 듯한 태도로 있는 힘을 다해 스윙하는 두 선수는 이미지가 비슷해 98년 남녀 혼성 이벤트 대회에서 한 조로 출전해 우승한 적도 있다. 당시 언론은 오누이를 보는 듯하다고 했다.

선수로서 비중은 데이비스가 훨씬 더 크다. 데이비스는 LPGA 투어에서 20승, 메이저 4승을 했다. 반면 존 댈리는 PGA 투어 우승이 5회(메이저 2승)에 불과하다.

그러나 공통점도 많다. 두 선수는 남녀 골프의 대표적인 장타자다. 타이거 우즈는 주니어 선수 시절 댈리의 장타를 보고 놀라서 밤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이후 우즈도 장타를 치기 위해 노력했지만 평생 댈리를 따라잡지 못했다. 댈리는 한때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가 314야드였다.

데이비스도 여자 골프에 거리 폭풍을 불러일으킨 선수다. 1m78㎝에 상체가 발달한 그는 마음만 먹으면 300야드를 친다. LPGA 투어가 드라이브 샷 평균거리를 처음 기록한 2004년 데이비스는 41세였는데도 5위에 올랐다. 당시 최장타였던 카린 쇼딘은 “로라가 제대로 치면 가장 멀리 나간다”고 말했다.

공격적으로 경기하는 그는 2004년 이글을 19개 잡아 LPGA 투어의 부문 기록을 가지고 있다. 그런 화끈한 성격은 도박에 빠지기 쉽다. 데이비스는 대회 출전을 결정하는데 인근에 카지노가 있느냐 없느냐가 중요한 요소다. LPGA 투어의 한국 선수들의 부모들은 “투어 기간 중 밤에 카지노에 가면 십중팔구 데이비스가 있다”고 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의 열혈 서포터인 그는 영국 스포츠 도박사들의 자문에 응하기도 했고 베팅을 좋아해 마주가 됐다. 물론 문제도 생겼다. 96년 에비앙 마스터스에서 휴대용 TV를 들고 다니며 경기 중 잉글랜드와 스페인 간의 유럽축구선수권 경기를 보다가 적발돼 징계를 받았다.

댈리는 음주로도 소란이 많았지만 도박으로도 유명하다. 댈리는 그의 자서전에서 “라스베이거스에서 5000달러짜리 슬롯머신을 즐겼으며 15년간 5000만~6000만 달러를 도박으로 날렸다”고 고백했다. PGA 투어 선수인 나상욱은 “댈리는 도박을 하다가 돈을 따면 기분이 좋아 차고 있던 롤렉스 시계를 옆 사람에게 준다. 그래서 댈리 주위 사람들은 대부분 롤렉스 시계를 차고 다닌다”고 말했다. PGA 투어는 여섯 차례 댈리를 조사했고 경기 중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경고를 21차례 내렸으며 벌금이 10만 달러에 이른다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됐다. 댈리는 트위터에 기사를 쓴 기자를 ‘얼간이’라고 표현하고 휴대전화 번호를 팬들에게 공개해 업무를 마비시켰다.

2010년 LPGA 투어의 거물 신인으로 꼽히는 어맨다 블루멘허스트(24)는 ‘여자 짐 퓨릭’으로 꼽힌다. 명문 듀크대에서 평점 3.78을 받았으면서 세 차례 올해의 대학선수상을 받은 엄친딸이다. 지난해 말 열린 LPGA Q스쿨에서 지역예선과 최종예선 모두 1위를 차지하면서 수석 합격했다.

그가 퓨릭과 비교되는 이유는 독특한 스윙 때문이다. 짐 퓨릭(40)의 8자 스윙과 매우 흡사하다. 짐 퓨릭이 괴상한 스윙을 하게 된 이유는 클럽 프로인 아버지에게서만 레슨을 받았기 때문인데 블루멘허스트도 아버지에게 스윙을 배웠다. 그의 부모는 골프장에서 만났고 이모와 삼촌은 골프장 헤드 프로다. “스윙을 보면 문어가 나무에서 떨어지는 것 같다”는 비아냥을 받았지만 퓨릭은 “누가 내 스윙에 대해 뭐라 그러든 상관없다”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다. 블루멘허스트도 “내가 편하면 됐지 남이 스윙을 어떻게 보는지는 상관없다”는 생각이다. 퓨릭은 ‘가장 일관성이 좋은 선수’로 세계 랭킹 2위까지 올랐다. 이 스윙으로 PGA 투어에서 16시즌 동안 상금을 4300만 달러나 벌었다. 댈리가 카지노에서 날린 돈보다는 적지만 역대 PGA 투어에서 넷째로 많은 상금이다.

퓨릭이 키(1m88㎝)에 비해 샷이 긴 편은 아니지만 블루멘허스트는 장타다. 아마추어 시절 메이저대회인 나비스코 챔피언십에 나가 평균 드라이브샷 거리 278야드로 1위를 기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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