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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형의 세상 바꿔보기] 역사 왜곡의 딱한 사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도공 14대 심수관(沈壽官)요에는 '히바카리' (불만 빌린)라는 초기 작품이 전시돼 있다. 흙.기술.사람, 모두가 한국 것이고 불만 일본에서 빌려 만든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설명문에서는 심수관가를 그 근처에 살았던 '토호족' 으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이 이 문제로 얼마나 고민하고 또 얼마나 자가당착에 빠져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한 대목이다.

손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는 일, 명명백백한 역사적 사실을 그게 아니라고 해야 하니 얼마나 억지고 무리일까. 당사자인 일본이 더 잘 안다. 온 세계 여론의 질타, 이웃 나라의 분노, 그리고 자국 내 양심세력의 반론에도 불구하고 왜 일본은 역사를 왜곡해야 하는 걸까?

소인배 근성, 극우파의 망동, 인정하면 보상을 해야하는 경제 동물의 타산 등 여러 가지 해석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근원적인 요인은 일본의 정체성(identity)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일본은 크게는 동양적인 것, 구체적으로는 한국적인 것에 대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일본은 서구적이라면 언어.문물, 모든 분야에서 무차별적으로 수용한다. 일본 잡지는 '괴상한' 영어가 반이다.

그러나 아무도 크게 저항감을 갖거나 반론을 제기하지 않는다. 많이 쓸수록 우쭐해한다. 대단한 유연성이다. 아주 실리적이다. 명분에 집착하는 우리와는 전혀 다르다.

일본의 근세사는 서구화 일변도였다. 동양적인 것은 철저히 배격했다. 특히 한국적인 것에 대해선 가위 알레르기 반응이다. 자기 속에 한국적인 것이 묻어 있다고 생각하면 징그러운 이물질처럼 대단히 거북해하고 창피스러워 한다. '동양의 서구인' 으로선 참을 수 없는 치욕이다.

불행히 많은 것들이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에 건너갔다. 일본으로선 이걸 인정하기가 죽도록 싫은 것이다. 자존심 상하는 일이요, 정체성에 위협을 받기 때문이다. 일본의 근세사는 여기로부터의 탈각.탈출을 위한 필사적 몸부림이었다. 특히 한국은 눈엣가시, 이걸 부정하고 떨쳐내야 하는 게 일본의 고민이요, 딜레마다.

일본으로 귀화한 한국인도 하루 빨리 한국을 탈피하려 한다. 아니 싫어해야 한다. 일본에선 제일 치욕적인 욕은 센징(조선 사람)이다. 조선 피가 섞인 걸 의식할수록 더 싫어하고 욕한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측은한 생각이 든다. 세계 강국을 자처하는 일본이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역사를 왜곡해야 하는지 그 딱한 심정이 이해가 될 것이다.

일본이 역사 왜곡을 스스로 중지하는 날은 한국이 일본을 능가하는 날이다. '우리도 한국처럼 돼 봤으면' 하는 마음이 우러날 때 일본의 태도는 달라진다. 아니면 정말 강하고 자신 있는 나라가 되든지. 독일처럼.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역사적으로 이웃하고 있다.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많은 것들이 섞여 있다. 그렇지 않다면 이상하다. 서로는 그걸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 점에선 우리도 예외일 수 없다. 일제 잔재를 없앤다고 중앙청 건물을 박살내 가루로 만들어 세종로에 뿌려야겠다는 발상도 있었으니 우리 역시 그리 큰 사람은 못된다. 결국 헐었지만 이 땅에서 일제 잔재가 사라졌는가.

영광만이 역사는 아니다. 치욕도 상처도 엄연한 역사다. 미화할 것도 비하할 것도 없는 사실 그 자체일 뿐이다. 잠시 숨길 순 있어도 역사의 수레바퀴는 어김없이 되풀이된다. 역사 앞에 서면 옷깃을 여미게 되는 소이는 여기 있다.

일본에도 양심 있는 학자들은 건재하다. 역사를 왜곡해야 할 만큼 정체성이 부실한가,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내 속에 있는 남의 것을 떨쳐야겠다는 편협한 강박증에서 벗어나야 한다. 인정하고 수용함으로써 조화를 이뤄야 한다. 세계는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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