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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는 고속철서 '시 낭송 대축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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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30일 낮 12시40분, 서울역을 출발해 부산으로 향하는 고속철(KTX) 안에서는 특별한 일이 벌어진다. 김종길.홍윤숙.김광림.허만하.김후란.이수익.강은교.정일근.정끝별.손택수씨 등 한국 시단의 원로부터 신인급까지 시인 170여명이 탑승한 가운데 시 낭송회가 벌어지는 것이다.

시 낭송회의 이름은 말 그대로 '시를 싣고 달린다'. 한국시인협회(회장 김종해)가 한국 현대시 100년과 시의 날(11월 1일)을 기념하기 위해 마련한 시인축제 프로그램 중 하나다.

하재봉 시인의 사회로 진행되는 낭송회는 1시간20분 동안 이어진다. 김남조.문정희.서정춘.신달자.유안진.이근배.정진규씨 등이 자작시 한 편씩을 낭송하고, 국악인 박윤초씨가 유치환의 시 '그리움'에 곡을 붙인 시창(詩唱)을 선보인다. 최고 시속 300㎞로 달리는 열차 안에서 느림과 여유의 메시지를 전하는 시편들이 시인들의 낭랑한 육성을 통해 울려퍼지는 것이다.

고속철 시 낭송회는 일반인들에게도 시를 감상할 특별한 기회가 될 전망이다. 열차 내 방송을 통해 낭송회가 중계되고, 원하는 승객 3명에게는 낭송 기회도 준다. 또 시인협회에서 펴낸 작은 시집 '시인들이 좋아하는 한국 애송 명시' 한 권씩을 무료로 나눠준다. 시집에 실린 시들은 계간 문예지 '시인세계' 가을호가 246명의 현역 시인을 대상으로 조사해 많은 표를 받은 시들을 모은 것이다. 곽재구의 '사평역에서', 김춘수의 '꽃',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강', 서정춘의 '죽편.1', 이형기의 '낙화' 등 주옥같은 52편의 시가 실려 있다.

일반 승객들에게는 할인혜택도 주어진다. 열차는 철도청이 마련한 임시편으로 2시간40분 만에 부산까지 논스톱으로 달리고, 시인들이 탑승하는 3량을 뺀 나머지 13량이 일반 승객 몫이다. 정상 요금의 10%를 할인해 준다.

시인축제는 31일까지 계속된다. 30일 오후 부산 MBC 아트홀에서 시낭송 축제가 벌어지고, 31일 오전 부산 그랜드 호텔에서는 한국 현대시 100년 기념 세미나가 펼쳐진다.

시인협회 김종해 회장은 "1898년 매일신문에 신시 '고목가'가 게재됐고 1907년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발행된 '해조신문'에 신체시가 실렸었다. 한국 현대시가 태동한 시기를 명확히 잡을 수 없기 때문에 1898년부터 1907년까지 10년 사이를 현대시 출발점으로 삼는다"고 밝혔다. "2004년과 2005년 두 해를 현대시 100년이 되는 해로 삼고 기념행사를 열기로 했다"는 것이다.

신준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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