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열며] 거꾸로 된 관심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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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궁예는 확실히 엉터리 중이다. 1천1백년전 살았던 진짜 궁예의 진면목은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적어도 KBS 주말드라마 '왕건' 이 부활시킨 궁예는 그렇다. 드라마를 한창 재미있게 만들고 있는 '관심법(觀心法)' 이란 말이 너무 엉터리라서 하는 말이다.

일단 드라마 속으로 들어가 얘기해보자. 드라마에서 궁예가 처음 관심법을 발견(?)한 대목부터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지난해 11월께 궁예는 경전을 읽다 관심법을 발견하곤 무릎을 쳤다.

"관심법이라…. 그렇지, 도를 깨닫고 일정한 경지에 이르면 참 나를 돌아볼 수 있다고 하였다. 나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경지를 넘어서면 나뿐 아니라 삼라만상을 다 볼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나를 본다. 그리고 상대를 본다. (중략) 내가 이걸 왜 여태 관심을 두지 않았을꼬?"

궁예의 독백 중 앞부분은 맞는 얘기다. 불교에서 관심법이란 도를 깨달을 수 있는 수행의 방편이고, 도를 깨달았다는 것은 곧 '참 나를 발견한다' 는 의미다. 그 다음부터가 문제다. 궁예는 관심법으로 '남의 마음도 읽을 수 있다' 고 착각한 것이다. 원래 '관심' , 즉 '마음을 본다' 는 것은 자신의 마음을 보는 것이지 남의 마음을 본다는 의미가 아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자기 마음속의 본모습' 은 곧 '부처의 마음' 이기에, 그 본모습을 보는 것이 곧 깨달음으로 통한다. 이같이 '내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 이라는 가르침은 불교의 기본교리며, 그래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관심법은 중요한 수행법이 된다.

드라마 속에서 궁예가 제멋대로 해석한 관심법은 피비린내 나는 살해극의 핵심 연결고리가 돼 한창 극을 치닫고 있다. 궁예는 지난해 12월 31일 신하들을 모아놓고 "나의 관심법에 걸려들지 않도록들 하라. 그대들의 인생이 끝나는 것이야. 알겠는가?" 라고 경고하더니 새해 들어서부터 쉴 새 없이 사람을 죽이고 있다.

점점 관심법의 본래 뜻과는 거꾸로 가고 있는 셈이다. 원래 관심법이란 궁예 같은 나쁜 마음을 경계하는 수행법이다. 나쁜 마음이란 곧 삼독(三毒), 탐(貪.탐욕).진(瞋.분노).치(痴.어리석음)다. 정확히 궁예의 최근 병적 증후군과 일치한다. 이런 삼독을 고치는 수행법인 관심법을 거꾸로 삼독을 한껏 내뿜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관심의 방향과 취지가 완전히 거꾸로 뒤집어진 것이니, 비록 드라마 속에서지만 궁예는 확실히 엉터리 중이다.

궁예가 엉터리로 휘두르고 있는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 을 정확한 불교용어로 말하자면 타심통(他心通)이라고 해야 한다. 타심통은 깨달음을 얻은 고승(高僧)들이 자연스럽게 발휘하는 일종의 신통술이다.

문제는 '왕건' 이란 드라마가 사극(史劇)이란 점이다. 사극이란 역사적 사실을 근간으로 삼고, 여기에 적절히 흥미를 더하기 위해 허구를 덧칠하는 형식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사극의 내용을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인다. 비록 궁예의 폭정을 상징하는 하나의 연결고리로 차입된 관심법이지만 너무 엉터리로 해석되면 곤란한 이유다.

더 아쉬운 것은 이같은 엉터리 해석에 침묵하고 있는 불교계다. 마음속의 불성을 깨닫기 위한 참선수행을 강조하는 선(禪)불교 전통을 자랑하는 불교계가 근본교리를 뒤집어 놓은 드라마에 가타부타 말이 없다.

드라마는 드라마라 인정하더라도, 적어도 그 내용이 잘못돼 있음을 분명히 지적하고 넘어가는 것이 불교를 위해서나 많은 시청자를 위해서나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오병상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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