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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일본의 극우 鄕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일본 도쿄(東京) 시내 전철역에서 지난달 한국인 유학생 이수현(李秀賢·27)씨가 낯모르는 일본인을 구하려다 숨진 후 진한 감동의 다리가 놓였던 한·일 관계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

일제의 과거 침략전쟁을 미화한 우파학자 단체의 중학교 역사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할 것으로 전해진 데다 노로타 호세이(野呂田芳成) 중의원 예산위원장의 침략전쟁 미화 발언이 나왔기 때문이다.

일본 내에서도 이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없는 것이 아니다. 역사학자 8백여명은 이 교과서에 대한 반대성명을 냈고,‘어린이와 교과서 전국네트21’등 일부 단체들도 우익 교과서 검정통과 저지에 앞장서고 있다.

국회에서는 비록 부결됐지만 야당들은 21일 노로타 해임결의안을 중의원에 제출했다. 그러나 갈수록 세력이 확산되는 보수화·우익화 풍조에 비하면 이같은 움직임은 너무 미약하다.

오랜 경기 침체와 정치에 대한 극단적 불신으로 일본 국민들 사이엔 요즘 민족주의에 대한 향수가 불거지고 있다. 우익단체들은 이에 편승해 더욱 적극적이고 조직적으로 세를 불리고 있다. 심지어 한국.중국 등 주변 국가 비판에도 엉뚱한 해석을 내릴 정도다.

한 보수 언론은 21일 ‘한국에서는 이전부터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대일 우호외교에 비판적이던 야당과 언론들이 최근 金대통령의 지도력 하락을 틈타 반일 정서의 선봉에 섰다’고 보도했다.

올 7월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정부·정치권 내에서도 이같은 분위기에 동조하는 세력이 많아지고 있어 앞으로 동북아 정세가 시끄러울 것이란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이것이 일본에 유리하게 작용하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내부 논리’만 따를 경우 일본의 고립은 불보듯 뻔하다.

세계는 갈수록 지역 내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 게다가 한국과 일본은 내년도 월드컵 공동개최국이다. 이를 계기로 동북아의 교류가 한층 확대될 수 있다. 그러나 일본이 주변국가의 인정을 받지 못하는 한 이런 것은 요원할 것이다.

오대영 기자/도쿄특파원<day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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