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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람] 70년간 동고동락한 노부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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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그 세월을 함께 살면서 부부싸움이라는 걸 해본 적이 없어. 남편 말을 따르며 살았고 남편도 내 입장을 늘 이해해 줬어. 부부간의 믿음과 화합이 결혼 생활에서 제일 중요하지. "

21일 결혼 70주년을 맞는 한용직(韓用稷.92.右).전화수(全和秀.88)부부가 이야기하는 성공적인 결혼생활의 비결이다. 결혼 60주년을 동양에서는 회혼(回婚), 서양에서는 금강혼(金剛婚)이라고 하지만 결혼 70주년을 지칭하는 말은 없다. 그만큼 드물다는 이야기다.

평남 용강군 신녕면이 고향인 이들이 부부의 연을 맺은 것은 1931년. 슬하에 7남1녀를 비롯, 증손주.외증손주와 이들의 배우자까지 합해 60여명에 이르는 자손을 둔 다복한 부부다.

신남포에서 살던 이들은 자녀 교육을 위해 47년 월남했다.

"자그마한 목선을 빌려서 온 식구가 타고 내려오는 데 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어. 몇 번 들켰지만 어렵게 빠져 나와 도착한 곳이 마포였지. "

북한 돈만 달랑 들고 온 데다 남쪽에 피붙이 하나 없었던 이들에게 살림 밑천이 됐던 것은 시집올 때 全할머니의 친정어머니가 준 무명 열 필이었다. 부부는 무명을 팔아서 끼니를 잇곤 했다. 친정어머니가 준 그 무명 가운데 두 필을 아직도 갖고 있다고 말하는 全할머니의 눈시울이 어느새 붉어져 있다. 먹고 살기 힘들었지만 8남매 모두 4년제 대학을 졸업시켰다고 자랑스러워 하는 부분에서는 목소리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수송동 문간방에서 살 때는 사람들이 괄시도 많이 했어. 그런데 아들이 경기중에 들어가니 주위 시선이 금세 달라지는 거야. " 韓옹은 한국전쟁이 끝나고 지금의 국세청 자리에서 교복을 만들어 파는 회사인 신생을 운영했다. 대학생들까지 교복을 입던 터라 사업은 무난했고 80년 은퇴할 때까지 열심히 교복을 만들었다.

이들은 "자녀들을 키우면서도 야단치거나 매를 든 적이 없었다" 며 "우리가 먼저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 가족끼리 화합할 수 있었다" 고 말했다.

자식들은 마흔을 막 넘어 당뇨병에 걸린 남편을 위해 직접 개발한 식이요법으로 건강을 유지하게 한 全할머니의 남편 사랑을 살짝 귀띔해줬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손주와 증손주들의 이름을 일일이 다 기억하고 있는 이들의 간절한 바람은 단 한 번이라도 고향에 가보는 것.

이산가족 방문 신청서를 냈지만 연락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마지막까지 열심히 살면 되는 거요.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존중하면서 자식들 잘 키우는 게 성공적인 결혼생활이지 다른 게 뭐 있나. " 결혼 70주년을 맞는 노부부의 평범하지만 소중한 조언이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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