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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즈] 동화로 보는 세상-음악·음악가 이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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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한 번 읽어보지 않을래요

모차르트를 만난 스트라도와 바리우스
마르티나 스칼라 지음, 김해주 옮김, 주니어김영사, 55쪽, 8500원, 초등 저학년

피터와 늑대
블라디미르 바긴 지음, 노경실 옮김, 토토북,31쪽,1만2800원, 초등 저학년

위대한 앵무새
지나 베리오 지음, 최순희 옮김, 느림보, 84쪽, 7500원, 초등 고학년

음악에 미쳐서
울리히 룰레 지음, 강혜경 외 옮김, 비룡소, 629쪽, 2만원, 초등 고학년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피아니스트’라는 영화의 무대는 1939년 폴란드 바르샤바이며, 피아니스트인 블라디슬로프 스필만이 주인공이다. 독일군의 점령 아래 가족과 헤어진 스필만은 폭격으로 폐허가 된 어느 건물에서 허기와 추위, 고독과 공포 속에서 생명을 지켜가다가 독일 장교에게 발각된다. 자신이 피아니스트라고 말하는 스필만에게 장교는 연주를 명령한다. 스필만은 영양실조로 앙상한 겨울 나뭇가지처럼 굳은 손가락을 잠시 비빈 뒤, 제 생명을 신의 손에 간절히 의탁하듯 연주를 시작한다. 쇼팽의 곡을 듣는 동안 독일 장교의 얼굴이 변한다. 반신반의하던 얼굴에 감동의 빛이 스미더니, 한 예술가에 대한 존경과 음악의 아름다움에 대한 경외심이 가득 번진다. 그때 내게 스친 생각 하나. 만약 스필만이 작가였다면 상황은 어떻게 되었을까?

영화의 줄거리는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다. 스필만이 아무리 걸작을 썼다한들, 그 전쟁통에 독일 장교에게 얼마나 제대로 독일어로 전달해줄 수 있겠는가? 게다가 상징과 비유의 문제는? 그 다음은 -소설이나 동화 같은 산문글에 있어서- 끝까지 읽어야만 알 수 있는 것이 문학의 묘미이자 함정이라는 것이다. 즉 문학은 심장에 바로 꽂히기에는 참으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이어서 길고 긴 여정을 끝내야만 참맛을 알 수 있다. 신이 주신 영감으로 작업한다 해도, 그것을 한 단어, 한 문장, 촘촘히 엮어 가는 냉정한 정신과 차가운 판단력, 끊임없이 되씹어보는 인내심과 수도자 같은 자기부정이 없으면 싸구려가 되고 마는 것이다. 싸구려! 그래서 문학은 술김이나 마약 기운에 함부로 휘두를 수 없는 과학이며, 값싼 감정이나 자기애착에 빠져 허우적댈 수 없는 수학이며, 철저한 자기부정과 창조자로서의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신학인 것이다.

그런데 문학이 음악을 동반자로 삼을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을 몇 권의 어린이 책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장인 안토니오 스트라도바리가 만든 바이올린 ‘스트라디바리우스’에서 착안한 『모차르트를 만난 스트라도와 바리우스』는 꽤 품격을 갖춘 음악이야기 책이다. 두 주인공, 스트라도와 바리우스는 프라하에서 모차르트를 찾아 여행에 나선다. 그 덕분에 우리는 책을 통해 프라하 여행과 함께 모차르트의 음악세계를 알게 된다. 눈을 감고, 귀로 들으며, 가슴으로 만족해야 하는 음악의 세계를 글과 그림이라는 터널로 통과해야 하는 것을 한계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색다른 체험이라고 해야 하나. 마지막 책장을 덮은 다음에 스스로 느낄 일이다.

『모차르트를…』가 음악을 앞세운 이야기라면 『위대한 앵무새』는 또 다른 이야기를 위해 음악을 차용한 경우다. 아마존 열대우림이 고향이며, 세계 각국을 누비며 목소리를 뽐내는 오페라 가수, 앵무새. 하지만 고향에서는 노래를 부를 수 없다. 고향의 숲은 파괴되고 있다. 대통령은 고민한다.

‘경제 발전을 위해 많은 나무를 잘라내 수출하고, 그 나무들 밑에 있는 검은 보물, 석유를 캐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국민들이 자신을 대통령 자리에서 쫓아낼지도 모른다. 하지만 숲은 지켜야 하는데….’ 경제발전이냐, 자연 보존이냐? 이 중요한 문제를 오페라 가수인 앵무새를 통해 풀어나가는 동화다. 어린이들은 이 책을 읽을 때 자신을 앵무새와 대통령의 입장에 번갈아 놓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아름다운 음악을 통한 정신의 평안과 경제발전으로 인한 물질의 풍요. 이 두 가지 유혹 앞에서 우리는 정녕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이 선택의 고민 없이 즐거움만으로 글과 음악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책이 『피터와 늑대』다. 대표적인 ‘음악동화’로 어린이들에게 ‘학습’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을 던져주는 대신, 음악의 즐거움과 ‘음악의 읽기 체험’을 경험하게 해 줄 것이다. 작은 새는 플루트, 오리는 오보에, 고양이는 클라리넷, 할아버지는 바순, 늑대는 프렌치 혼, 사냥꾼들은 팀파니, 피터는 바이올린. 이 악기들이 어우러진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을 때 우리의 눈과 귀는 즐거워지며, 마음을 번잡하게 하는 늑대 한 마리가 휘익 도망가는 듯한 상쾌함에 빠질 것이다.

자, 이 정도 책들을 읽고 나면 무언가 정리해야 하지 않을까.

『음악에 미쳐서』가 그 작업을 도와줄 것이다. 바흐·헨델 등 14명의 음악 거장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는 단순한 음악가 입문기나 성공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14명의 음악가 이야기는 바로 14가지의 인생 이야기이며, 14가지의 훌륭한 동화다. 우리들이 즐겁거나 슬플 때 친구처럼 함께하는 이 세상 모든 아름다운 음악, 그것의 탄생은 음악가들의 고통과 눈물, 방황 속에서 이뤄졌다. 그 탄생의 과정을 읽어가며 우리는 예술의 길과 삶의 여정의 흡사함에 놀랄 것이다.

위대한 인물이 아니라 해도 제 인생을 한 편의 작품으로, 한 편의 음악으로 만들어갈 줄 아는 사람. 박수와 찬사와 비난과 실패를 염려하지 않은 채 제 삶의 기록을 원고지와 오선지 위에 당당하게 그려 넣을 줄 아는 사람. 겨울 초입이라 그런지 그리워진다, 간절하게.

노경실(동화작가)

***교훈 + 재미… 청소년에 딱!

삼국지
나관중 지음, 박상률 옮김, 백남원 그림
시공주니어, 전10권,각권 1만2000원, 초등 고학년부터

인터넷 교보문고에서‘삼국지’라는 단어를 입력하면 무려 470여종의 책이 검색된다. 성인용 번역물부터 아동용 만화,학술서, 경영·처세서 등 성격도 다양하다. 반면 ‘고구려’를 입력하면 이보다 훨씬 적은 110여권이 등장할 뿐이다. 또 삼국시대를 이끈 영웅인 조조·유비·손권을 모르는 사람은 없지만 동시대 고구려 왕인 산상왕이나 동천왕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공식적으로 삼국시대는 220년 한나라의 멸망으로 시작돼 280년 통일제국 진나라의 성립으로 막을 내린다. 사실 분열과 통일을 수없이 반복한 중국사 전체를 놓고 따져보면 역사적으로는 이 시기가 그리 도드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 우리가 그 시대 중국대륙에서 벌어진 사건과 사람들의 이야기에 이토록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그것은 다름아닌 문학이 가진 힘이다.

소설은 진나라때 학자 진수가 편찬한 역사책 『삼국지』에 바탕을 두고 있다. 부여·고구려·동옥저·마한·진한의 이야기가 함께 기록돼 국사 시간에 단골로 등장하는 바로 그책이다. 이것을 후세 수많은 이야기꾼들이 극적으로 재구성하고, 원나라때 나관중과 청나라때 모씨 부자 등이 다듬은 것이 오늘날 우리가 아는 소설 『삼국지』다.

1000년 이상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손과 입을 거쳐 만들어졌기에 소설 『삼국지』에는 역사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생생한 인간의 이야기가 들어서 있다. 무려 1000명이 넘는다는 등장 인물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지략과 용기, 의리와 배신의 드라마를 엮어간다.

승자의 편에 설 수밖에 없는 후세 역사책과는 달리 소설은 대중이 보다 선호하는 인간적 정리의 대의를 따라간다. 한편으로는 영웅의 화려한 무용담이 펼쳐지지만 또 한편으론 인생과 권력의 덧없음을 노래한다. 그 방대한 규모나 그 속에 담긴 삶의 지혜를 감안하면 ‘삼국지를 읽지 않은 사람과는 인생을 이야기하지 말라’는 다소 과장된 말이 나올 만도 하다.

이번에 나온 청소년용 『삼국지』는 이런 소설적 특징에 주목했다. 현대적 해석이나 역사적 사실을 첨가하기보다는 원본을 그대로 옮기는 데 주력하고 흔히 아동용 책에서 발견되는 과도한 축약이나 짜깁기도 피했다고 한다. 대신 한자는 가급적 우리말로 바꿨다. ‘도원결의’를 ‘복숭아밭에서 한 다짐’으로 옮기는 식이다. 삽화와 역사지도·연표·고사성어 등 관련자료가 많이 실린 것도 특징이다.

조민근 기자

***꿈꾸던 세상에서 주인공 되기

아로와 완전한 세계
김혜진 지음, 바람의 아이들,
528쪽, 1만3000원, 초등 고학년부터

많은 아이들이 ‘완전한 세계’를 꿈꾼다. 현실이 불완전하기 때문이다. 부모들은 항상 바쁘고 형은 같이 놀아주지 않는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의 목록보다는 그 반대편 목록이 훨씬 길다.

주인공 아로도 지루한 일상에서의 탈출을 꿈꾸는 아이다. 해리포터가 킹스 크로스 역의 보이지 않는 출구를 통해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 신기한 모험을 펼치듯. 특이하게도 아로를 ‘완전한 세계’로 이끈 것은 책이었다. 그 속에서 아로는 구원자인 ‘읽는 이’가 되어 위험에 처한 열두 나라를 구한다.

작가는 말미에 ‘별꽃나무’의 입을 빌려 작품 전체의 메시지를 전한다.

“너는 너의 세계로 가는 것이 더 행복할 거다. 그 누구도 네가 어떻게 될지 짐작할 수 없는, 그래서 무엇이라도 될 수 있고 무엇이라도 할 수 있는 불완전한 세계의 아이로 사는 게 더 좋을 거야.”

‘완전한 세계’가 곧 ‘행복한 세계’는 아니며, 현실은 불완전하기에 변화와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것이다. 비루한 현실과 신나는 환상의 세계를 이분법적으로 구분하는 여타 팬터지류와 차별되는 지점이다. 말만 앞세우던 아로가 모험을 통해 ‘읽는 이’로, 그리고 다시 ‘듣는 이’로 태어나는 등 성장소설적 요소도 많다. 전체적으로 스토리보다 상징과 메시지가 앞선다는 느낌도 있지만 워낙 드물게 보는 국내 작가의 팬터지 동화라 반가운 느낌이 먼저 드는게 사실이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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