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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등 잇단 자사주 소각, 득인가 실인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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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상장.등록기업의 자사주 소각이 잇따르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19일 서울증권도 오는 23일부터 5월 22일까지 2백72억4천만원을 투입해 자사주 4백만주(12.17%)를 주식시장에서 매입해 소각하겠다고 공시했다.

이로써 자사주 소각을 공시하거나 발표한 기업은 거래소 상장기업이 5개, 코스닥 등록기업이 3개 등 모두 8개로 늘어나게 됐다.

이같은 추세는 우선 주주 이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기업 경영진의 인식이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자사주 소각은 유통 주식수를 줄일 뿐 아니라 투자자들로 하여금 해당 기업이 주가에 그만큼 관심이 높으며 내실을 갖추고 있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주가에 호재이나 주의 필요〓자사주 소각을 발표한 쎄라텍과 삼성증권의 19일 주가는 발표 당일보다 각 73%.63% 오르는 등 모두 상승했다.

미국에서는 대부분의 기업이 자사주 매입.소각을 주가 관리의 주요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1987년 10월 블랙 먼데이 당시 6백50개의 미국 상장사들은 자사주 소각을 잇따라 발표해 시장 안정에 기여했다.

한국증권연구원 김형태 연구위원은 그러나 "자사주 매입.소각 자금이 회사 이익에서 나오는 만큼 실질적인 기업의 가치를 높이는 효과는 미미하다" 며 "투자자 입장에서 보면 배당금으로 받거나 회사의 미래를 위해 재투자돼야 할 자금이 자사주 소각 자금으로 지출되고 유통주식이 줄어드는 만큼 배당금이 줄어들게 된다" 고 지적했다.

◇ 자사주 소각 추진 활발〓국내 기업들은 최근 자사주 소각의 필요성을 인식하며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증권거래소 조사 결과 12월 결산법인 중 지난 16일까지 주주총회 개최를 신고한 1백11개 업체 중 주식 소각제도의 도입 근거를 신설하기로 한 기업은 넥센타이어.청호컴넷.고려아연.LG건설 등 16개(14%)로 나타났다.

코스닥증권시장 유시왕 전무는 "기업 경영권을 공격할 수 있는 방법이 적대적 기업인수.합병(M&A)이라면 방어할 수 있는 방법은 자사주 매입.소각" 이라면서 "M&A에 대한 규제가 대폭 풀리는 것을 감안해 자사주 매입.소각 관련 규정도 크게 완화할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다.

대부분의 코스닥기업의 경우 배당 가능 이익이 적은 만큼 한시적으로 주식발행 초과금으로도 자사주 매입.소각을 허용해야 한다는 게 그의 견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자사주 소각이 자칫 주주 이익보다 대주주의 경영권 보호나 작전을 위한 도구로 악용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 자사주 소각에 투입할 만한 재원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서 추진했을 경우 재무구조 악화로 연결될 우려도 없지 않다.

◇ 정부도 자사주 소각 유도〓재정경제부는 자사주 소각을 활성화할 수 있도록 증권거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국내 자사주 매입.소각 제도는 상법에서 배당 가능한 이익 범위 안에서 하도록 한정한 것 외에 증권거래법과 금융감독위원회 규정으로도 규제하고 있는 것.

이에 따라 우리의 자사주 매입.소각은 부진하다.

한국증권연구원 최운열 원장은 "미국 GM과 포드는 80년대말 자동차 경기가 불황을 맞자 유통주식의 절반 가까이를 자사주로 매입해 주가를 관리했다" 며 "규제를 완화하는 대신 이 제도가 나쁜 방향으로 운용되지 못하도록 감시 체계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고 지적했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증권거래법 개정안은 이달 중 통과될 전망이다.

재정경제부 김태현 서기관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주주총회에서 특별 결의를 거쳐 자사주 소각을 할 수 있게 돼 이 제도 활용이 활발해질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이영렬·정재홍·정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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