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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빌딩 ‘광화문 글판’ 20년 … 그 글 읽으면 마음 따뜻했었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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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외환위기의 고통이 뼛속 깊이 파고들던 1998년 12월. 서울 광화문 교보생명 빌딩 외벽 ‘광화문 글판’에 이런 글이 실렸다. ‘모여서 숲이 된다. 나무 하나하나 죽이지 않고 숲이 된다. 그 숲의 시절로 우리는 간다.’

고은 시인이 나락으로 떨어진 국민을 위해 외친 희망가다. 고은 시인은 광화문 글판에 올리기 위해 이 글을 썼다.

1일 광화문 교보생명 건물 외벽에 61번째 글판이 올랐다. 장석남 시인의 ‘그리운 시냇가’에서 따온 글이다. [김태성 기자]

1일 스무 해째를 맞은 광화문 글판에 61번째 글이 실렸다. 장석남 시인의 ‘그리운 시냇가’에서 따온 글귀다. 1991년 시작된 광화문 글판은 초창기에는 연 1~3회 부정기적으로 내용을 바꾸다가 2003년부터 사계절에 맞춰 연 4회(3·6·9·12월)로 정착했다. 지금까지 광화문 글판에는 시인과 동서고금의 현인 40여 명의 작품이 등장했다.

글판을 가장 많이 장식한 작가는 고은 시인이다. 일곱 차례나 됐다. 그는 광화문 글판을 위해 별도로 시를 두 편이나 지었다. 김용택 시인은 3편의 시를 광화문 글판에 올렸다. 도종환·정호승·정현종 시인과 유종호 평론가는 각각 2편의 작품을 게재했다.

글판은 시대상을 반영한다. 초기엔 직설적인 표어가 주류였다. ‘나라경제 부흥시켜 가족행복 이룩하자’(97년 1월, 교보생명 사내 창작). 회사 홍보문구도 빠지지 않았다. ‘오늘의 교보생명, 내일의 경제부흥’(97년 2월).

하지만 외환위기가 닥치자 글판은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쪽으로 변했다. 당시 신용호 교보생명 창립자가 “기업 홍보를 생각하지 말고, 고통받는 시민에게 위안을 주는 글판으로 운영하자”고 제안하면서다.

광화문 글판에 실리는 문구는 2000년부터 시인·소설가·평론가·언론인 등으로 꾸려진 ‘문안 선정위원회’가 정한다. 구성된 선정위는 위원들의 추천작과 시민들의 공모작을 심사해 최종 작품을 결정한다. 그동안 광화문 글판에 오른 문구는 블로그(blog.naver.com/kyobogulpan)에서 볼 수 있다.

글=김종윤 기자
사진=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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