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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교피아’ 철밥통 깨는 교직 개방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서울의 한 초등학교 A선생님이 지난 11일 전근을 가면서 반 아이들에게 남긴 편지는 이랬다. “3반 친구들에게…. 두세 가지만 기억해 다오. 너희들은 이제 ‘○○○(선생님 성함) 표’다. 잘못하거나 잘하면 그게 선생님의 잘못, 영광이 될 수 있으니까. …기회는 준비된 자의 것이다. 기회가 왔지만 실력이 없으면 속상할 거야. 꿈을 크게 갖고 열심히 노력하렴. …혹 선생님 때문에 마음에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있으면 진심으로 용서를 빈다. …바람결에 너희들이 잘 크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선생님은 아주 행복할 거다.”

편지는 한 학부모가 중앙일보에 보내왔다. A선생님은 더 있어도 되는 학교를 떠났다. 교장 선생님과 관계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교장이 추진하는 일에 여러 차례 맞서 미운털이 박혔다는 것이다. 그 교장은 최근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학부모들 사이에 A선생님은 ‘로또 선생님’으로 불렸다. 아이들을 사랑한 선생님이었다. 사교육에 지친 아이들에게 경쟁심을 자극하기보단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는 근본적인 동기를 일깨워 줬다. 수업도 충실했다. 이 학교에 부임한 5년 전 촌지를 들고 온 학부모들에게 “저에 대한 모욕”이라며 돌려보냈다. 학부모들은 고마움을 표현할 방법이 없어 답답해할 정도였다.

초등학교뿐만이 아니다. 중·고등학교도 마찬가지다. 교장·교사가 어떤 인품·철학을 가졌느냐에 따라 학교는 아이들에게 천국이 될 수도, 지옥이 될 수도 있다. 연일 교육 비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교육 비리의 뿌리는 뭔가. 초등학교에서부터 중·고교, 시·도 단위 교육청에 이르기까지 퍼져 있는 학맥·인맥·파벌 중심의 이른바 ‘교피아(교육계 마피아)’다. 그들의 구조화된 관성적 비리가 핵심이다. 교육감·장학관·장학사가 교장과 교감의 인사를, 교장이 교사의 인사권과 행정 전권을 쥐고 있다. 이번에 매관매직의 대상이 됐던 장학사는 임기를 마친 뒤 다수가 노른자위 지역의 교장으로 임용된다. 교육청 안엔 최근 문제가 된 특정 교육감을 포함해 몇몇 ‘대부(代父)’가 교육계를 말아먹고 있다는 말까지 나온다. 견제·감시자 없는 철옹성 속에서 철밥통을 끌어안고 있는 교피아의 현실이다.

이명박 정부 초기 추진된 교육 개혁 핵심은 인사제도였다. 교장 공모제를 확대하고 교육청의 인사권, 규제 기능 대신 서비스를 강화하자는 게 개편의 요체였다. 당시 교육청은 물론 교총까지 집단 반발했던 이유가 짐작된다. 교피아의 먹이사슬에서 자유로운 인물, 아이들을 사랑하는 훌륭한 인물들이 교육계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한다. 교장 공모제가 확대돼야 하고, 공립학교에서도 휼륭한 선생님을 채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초·중·고 강사제도’도 도입해 교육 철학이 있는 실력자들을 아이들 앞에 서게 해야 한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이르면 주 중에 교육 비리 근절과 개혁을 위한 로드맵을 발표한다. 아이들이 “엄마, 저는 ‘○○○ 표’예요”라고 자랑스러워할 선생님들이 교단의 주인이 되는 그런 날이 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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