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부! 나도 일하고 싶다] 2. 이렇게 뚫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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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집에서 애나 잘 봐. 무슨 일을 할 수 있다고. "

얼마 전 이력서를 쓰고 있던 강순진(가명.35)주부는 남편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에 이력서를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버렸다.

'남편이란 사람까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과연 사회에서 나를 다시 받아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강씨와 같은 경험을 한 주부들이 적지 않다. 또 '남자들도 구조조정으로 쫓겨나가는 판' 이라며 자포자기한 주부도 있다.

그러나 미리 속단할 필요는 없다. 주변을 살펴보면 '아줌마' 특유의 뚝심과 섬세함으로 재취업에 성공한 주부들이 많다.

세 아이(7, 5, 3세)의 엄마인 정현숙(32)씨는 지난해 말 겪었던 입사 면접시험장의 모습을 이렇게 전한다.

"아이들에게 엄마가 가장 필요한 시기인데 일하기 어렵지 않을까요?" 면접관의 질문이다.

"그럼 아이들에게 엄마가 중요하지 않을 때는 언제인가요□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애들을 열심히 더 키우고 다시 오겠습니다. 그 때는 꼭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정씨의 뚝심있는 답변에 면접관의 마음이 흔들렸는지 정씨는 20대1의 경쟁률을 뚫고 현재 프루덴셜생명보험 라이프플래너로 근무 중이다.

정씨는 "결혼 후 다니던 직장을 잠시 그만두었지만 언젠가는 다시 내 일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항시 영어.컴퓨터.시사 공부를 놓지 않았다" 고 덧붙였다.

아이들과 살림에만 매달리지 말고 정씨처럼 자신의 계발을 소홀히 하지 않는 게 주부들이 취업의 벽을 뚫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한국생산성본부 경영교육부 여상철(42)부장은 "결혼 전 좋은 직장과 월등한 실력도 결혼 후 가꾸지 않으면 모두 무용지물" 이라며 "현직에 있는 남성이나 무더기로 쏟아지는 젊은 인재들과 경쟁하기 위해선 자신의 실력을 꾸준히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위치한 이가편한치과에서 일하는 김현숙(29)주부의 명함엔 '병원서비스 코디네이터' 란 생소한 직함이 적혀 있다.

김씨는 결혼 전 간호사 경력을 신종 직업으로 연결해 쉽게 재취업에 성공했다.

병원서비스 코디네이터는 의사 중심의 경영에서 탈피해 환자, 즉 고객 중심의 서비스를 하기 위해 선진 외국에서 들어온 새 직종. 이를 위해 김씨는 따로 6개월 동안 사설 교육기관에서 전문교육을 받았다. 현재 그녀의 연봉은 2천5백만원.

애경 고객상담실에서 근무하는 김진숙(34)씨는 주부의 섬세함이 요구되는 주부모니터 일을 하다가 정규 직원의 자리를 차지했다.

김씨는 결혼 뒤 7년여 동안 30여개 업체의 모니터로 일했다. 한꺼번에 4~5곳을 담당할 땐 월 1백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며 성심성의껏 노력했다고. 이런 김씨를 애경에서 전격 발탁해 1년 동안 파트타임으로 고용했다가 깔끔한 일처리를 인정, 지난해 정식 직원으로 발령낸 것. 김씨는 교사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현재 대졸 1년차와 같은 봉급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부족한 점이 많아 과분한 보수" 라며 겸손함을 내비쳤다.

김씨는 업무적으로는 나이어린 상사나 선배 직원들에게 깍듯한 후배로, 사적인 자리에선 자상한 언니.누나로 주변의 호평을 받고 있다.

'송파 일하는 여성의 집' 전은미(39)관장은 "중년 주부들은 전문직이나 정규직 취업은 어렵지만 전혀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고 말한다.

마흔이 안된 주부가 지금 당장 취업하지 않아도 된다면 2~6개월 교육을 받은 뒤 취업할 수 있는 텔레마케터.컴퓨터 방문교사.학습지 방문교사.컴퓨터 디자이너 등을 할 수 있다는 것.

또 마흔이 넘었다면 상담사 과정을 교육받거나 부동산 중개사 등 자격증 취득에 도전해 볼 것을 권했다.

유지상 기자

사진=김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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